[중앙시평] 기업의 사회공헌 범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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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최근에 기업의 사회공헌과 관련해 몇가지 사건이 있었다. 하나는 국내의 앞서가는 13개 벤처기업이 부의 편중에 따른 반(反)벤처기업정서를 차단하기 위해 총 2천억원에 달하는 여러 개의 공익재단을 세우겠다고 발표했다.

또 하나는 대통령이 대기업들에 사회소외계층을 위해 이익의 일부를 내놓으라고 말했고, 전국경제인연합회는 회원사들이 세전이익의 1%씩 기부해 이를 빈민구제에 쓰겠다고 발표했다. 이 사건들은 여러 가지 생각해야 할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기업의 기부활동은 어디까지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인가. 정부가 기업의 사회공헌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이 옳은가. 지금의 우리나라의 세제와 규제는 개인이나 기업의 기부를 촉진하고 있는가 등이다.

한국의 대기업들은 지난 수십년간 여러가지 이유로 많은 기부활동을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다. 상당히 많은 부분은 정부가 강요해 하는, 수없이 내놓는 준조세적 기부였고 또 한편으로는 한국 사회의 연고주의 때문에 학교 등 비영리 부문에 기부를 해왔다.

기업이 계획적으로 그렇게 한 것은 아니지만 기업을 둘러싼 여러 관련자들의 이해를 조화시키는 이해당사자 모형(stakeholder model)에 따라 움직여온 셈이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IMF)위기 이후에 기업의 지배구조가 바뀌면서 기업경영이 주주중심(stockholder model)으로 바뀌고 있다. 기업의 기부행위는 주주에게 돌아갈 이윤을 쓰는 것이기 때문에 주주로서는 당연히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기업이 얼마나 사회공헌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몇가지 다른 견해가 있으며 어느 견해가 반드시 옳다고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기업의 이윤은 경쟁력 강화를 위한 재투자, 사원들에 대한 인센티브, 주주에 대한 배당 등 여러 목적으로 사용돼야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기업의 사회에 대한 기부가 반드시 많을수록 좋다고 할 수는 없으며, 일정한 기준을 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세법에서는 기부금의 공제 한도를 정해놓고 있으나 그보다는 기업들이 세전이익의 일정 수준, 예를 들면 1% 또는 2% 등을 정해놓고 기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미국 기업들은 '2% 클럽' 이라고 해서 자발적으로 그러한 운동을 하고 있으며, 일본은 게이단렌(經團連)을 중심으로 '1% 클럽' 을 결성해놓고 있다.

그러나 기업의 사회공헌은 기업이 자발적으로 또한 계획적으로 할 일이지, 정부가 간섭하거나 권유할 일은 아니다.

기업이 사회공헌을 하는 방법이 반드시 기부활동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현대기업은 많은 기술.조직력.노하우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지적 자산을 사회를 위해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며, 여기에는 사원들의 자원봉사가 합쳐져야 효과가 있다.

기업의 사회공헌은 직접기부와 재단의 설립을 통한 방법이 있다. 미국의 경우에는 기업가 개인들이 재산을 출연해 재단을 만드는 것이 더 일반적이며, 그런 경우 그 재단은 기업과는 관계가 없게 된다. 이미 세계 최대 재단이 된 빌 게이츠 재단도 가족 독립재단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지금까지 기업재단을 통해 재벌이 상속세를 회피하고 이를 지주회사로 활용하지 않을까 하는 의심 때문에 재단에 대해 각종 규제가 많았다. 또한 IMF를 거치면서 많은 재단들이 거의 빈 껍데기가 돼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가 건전한 자본주의 체제를 만들려면 경쟁을 통해 성공한 기업인이 축적한 부를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고 재단을 세워 사회개량에 투자하는 부(富)의 선순환(善循環)의 전통을 세워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인과 부에 대한 국민의 태도가 바뀌어야 하며, 기부 및 재단설립과 운용에 대한 법과 규제의 기본전제가 바뀌어야 한다.

정구현<연세대 경영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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