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업노하우] 기인시스템㈜ 이기원 사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7면

기인시스템㈜의 이기원(李起元.40)사장은 전력시스템 제어기기 분야의 벤처기업가다.

李사장은 지난 1월 전력선으로 초고속 인터넷을 할 수 있는 모뎀을 세계 처음으로 개발해 도시바(東芝).독일 지멘스 등 선진 전력기기 업체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 모뎀을 일반 가정집 전원에 연결해 데이터는 물론 음성 전송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산업자원부는 이 모뎀이 개발되자 바로 '전력선 이용 통신기술' 을 산업기반 기술 거점사업으로 지정했다.

그는 1988년 서울공대 박사과정 때 한국전력이 발주한 '송전사고 예방 디지털 보호계전기(디지털 릴레이)' 의 기반기술 연구로 전력기기 시스템과 첫 인연을 맺었다.

당시 국내 주요 제품을 거의 미국.일본.독일에서 수입하고 있었기 때문에 외제에 맞서는 제품을 개발하겠다는 오기가 발동해 92년 회사를 차렸다.

기인시스템은 창업 3년만에 절전(節電)제어장치를 국산화해 순항하는 듯했지만 97년 외환위기로 도산 위기까지 몰렸다. 2년동안 매출이 거의 없어 10억원의 넘는 집안 재산까지 동원했지만 임직원 월급조차 제 때 주지 못했다.

정책자금의 이자 내기도 버거웠다. 유망 벤처기업으로 지정돼 각종 정부지원자금을 받다 보니 부채비율은 당시 2천%를 웃돌았다.

李사장은 "그때 회사 문을 닫았으면 '전력선통신 모뎀' 도 탄생하지 않았을 것" 이라며 "지금은 정부가 자금을 준다고 해도 회사 자금사정을 봐가며 가려 받는다" 고 말했다.

李사장은 3년 안에 본사를 미국으로 옮겨 나스닥에 직상장한다는 꿈을 갖고 있다. 선진업체들과 진검승부를 벌이겠다는 것이다. 그는 벤처창업을 하려는 후배들에게 '반짝 아이디어를 과신하지 말라' 고 훈수했다.

◇ 국내용 기술만 갖고 승부하지 말라〓튼튼한 기반기술을 가져야 진정한 벤처다. 세계시장에 내놓아도 버틸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국산화 한 제품 중 상당수가 얼마 못 가 퇴출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 아이디어만 갖고 사업을 하는 것은 산에서 물고기를 찾는 격이다. 미국의 벤처투자가들은 제품개발과 관련한 기반기술이 검증되고 또 그 기술과 제품이 세계시장 미치는 파급효과를 보고서야 투자한다.

◇ 마케팅에 소홀하면 실패한다〓벤처기업가들은 좋은 제품만 만들면 물건이 저절로 팔린다는 생각을 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팔리지 않는 제품은 의미가 없다.

처음엔 정책자금 지원으로 회사를 꾸려갈 수 있지만 물건이 안 팔리면 회사 문을 닫아야 한다. 기인시스템도 창업 5년이 지나서야 마케팅 전문가를 영입하는 시행착오를 했다.

◇ 지나친 개발 욕심은 화(禍)를 부른다〓아이디어가 떠오른 대로 제품을 개발하면 기술개발의 집중력이 떨어지고 제품개발 자체가 종종 회사의 짐이 된다.

기인도 전력시스템 관련기기 외에 수(水)처리 기기.교통제어 기기등 30여개 품목을 동시 다발적으로 개발에 나섰었다.

하지만 시장성이 없는 제품들은 햇빛도 못보고 사장됐다. 주력제품과 관련한 기술개발에 집중하는 것이 인력과 자금 낭비를 줄이는 길이다.

고윤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