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경제발전에 비례할까…'20세기의 역사' 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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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빅토리아 여왕이 영 제국을, 청 왕조는 중국을, 로마노프 왕조는 러시아제국을 지배했던 1900년. 영화는 걸음마 단계였고 라디오.TV는 개발 중이다.

희망과 두려움이 섞인 새 세기의 막이 그때 열렸다. 희망은 전기.내연기관.항공술 등 과학의 발달로 세상이 새로운 황금시대에 접어들고 있다는 기대에서 비롯됐다.

반면 전쟁과 혁명으로 서구 사회를 지탱해온 전통적 가치관과 사회구조가 붕괴하면서 강한 자들만이 미래에 살아남을 것이란 전망은 두려움을 가져왔다.

지금은 어떤가. 새천년의 희망이 지배적임에도 불구하고 미래의 낙관적 전망을 옥죄는 요소들이 곳곳에 자리한다.

그래서 마이클 하워드 미 예일대 역사학 교수는 "새천년을 맞는 우리의 21세기 역시 1900년대와 비슷한 역설에 직면하고 있다" 고 충고한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1백전의 희망과 두려움은 대체로 서방산업사회에 국한돼 있었으나 이제는 지구 전체로 퍼졌다는 것이다.

1900~97년의 역사를 정리하고 있는 '20세기의 역사' (원제 : The Oxford History of The Twentieth Century.가지않는길.2만9천원)는 20세기를 각 분야별로 다양하게 반추해보면서 21세기의 인류 변화에 대한 흐름을 가늠할 수 있도록 한 독특한 역사교양서다.

98년 영국 옥스퍼드대 출판부가 기획해 출간한 이 책은 마이클 하워드를 비롯하여 79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스티븐 와인버그, 동아시아사 권위자 이리에 아키라(入江昭) 하버드대 교수 등 세계의 석학 26명이 공동집필했다. 번역에도 차하순 서강대 명예교수 등 20명이 참여했다.

일반적으로 역사서가 정치.경제사 중심임을 감안할 때 '20세기의 역사' 는 제국주의의 팽창과 식민지 지배,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물론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DNA복제.우주탐사.인터넷 등 20세기 중요한 사건들과 핵심 문제들을 골고루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인구증가.도시화.과학지식의 성장, 예술.문화.경제발전 등을 주제로 20세기에 시작된 세계의 변화에 대한 원인과 징후를 살피고 있는 저자들은 1백년 동안 경제는 혁혁한 성공을 거두었지만 과연 그 성공이 인간에게 복지를 가져다 주었는지 되묻는다.

또 인류에게 20세기는 비극으로 점철됐다는 점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류는 그것에 매몰되지 않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능력을 발휘했으며 이를 다음 세기에도 계속 이어나갈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결론이다.

강력한 영향력으로 마치 20세기가 미국의 세기인 것처럼 비치는 서구의 영향력이 강력한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아시아.중동.아프리카의 사회구조 변화와 주요사건을 꼼꼼히 검토해 서구 중심 사관을 수정하려는 점이 신선하다.

특히 이리에가 한국에 대해 "일제의 침략과 분단의 고통을 딛고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이룩한 모범적인 동아시아 국가" 라고 평가하는 부분도 주목할만 하다.

6백여 쪽의 적지 않는 본문의 사이사이에 88서울올림픽 개막식 장면이 포함된 1백20컷의 화보와 70쪽에 이르는 20세기 연표가 한 세기의 흐름을 한눈에 알 수 있게 돕고 있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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