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 하루 만에 등 돌린 오바마와 하토야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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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미·일 정상회담에서 동맹 강화를 강조한 두 나라 정상이 하루 만에 후텐마(普天間) 비행장 이전 문제를 놓고 돌아섰다. 양국 정상회담을 통해 상당히 아무는 것 같았던 미·일 관계가 하루도 못 넘기고 파열음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14일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회의 참석차 싱가포르에 도착한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일본 총리는 “백지 상태에서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전날 하토야마와 오바마는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선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를 조속히 매듭짓겠다”며 손을 잡았었다.

그랬던 하토야마는 “오바마 대통령으로서는 기존 일·미 합의를 전제로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를 논의하고 싶어하겠지만 그럴 거라면 작업팀을 가동할 필요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기지 이전 논의를 위해 이번 주 발족할 예정이었던 미·일 실무작업팀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불과 하루 만에 오바마 뜻대로 하지 않겠다는 걸 분명히 한 셈이다.

이에 대해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15일 “후텐마 비행장 이전 문제를 놓고 미·일 정상의 거리가 하룻밤 만에 다시 멀어졌다”고 보도했다. 요미우리신문 등 다른 언론들도 “정상회담 하루 뒤 나온 하토야마 총리의 발언은 미·일 간의 입장차를 다시 부각시켰다”고 전했다.

주일 미군 재편 문제는 미·일 동맹의 근간을 건드리는 사안인 만큼 여당인 민주당 내에서도 12월 중 조속히 매듭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럼에도 미국에 끌려가지 않겠다는 하토야마의 의지는 단호하다. 기지 이전 결정 시기에 대해서도 “연말까지 결정하겠다고 미국에 약속한 바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14일 한발 더 나가 “미·일 간 안전보장 문제를 재고할 때가 됐다”며 취임 후 외교정책으로 내세웠던 대등한 미·일 관계를 또 한번 되풀이하기도 했다.

한편 지난 미·일 정상회담에서 오바마가 “기존 미·일 합의를 조속히 이행하라”며 강하게 일본 측을 압박한 사실도 밝혀졌다. 요미우리신문은 15일 정부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 “오바마 대통령이 ‘시간을 끌면 문제 해결이 더 어렵다. 2006년 합의대로 빨리 결정하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오바마는 “기본은 지켜야 하는 것 아니냐”며 예정대로 오키나와현 나고시 슈와브 기지로 이전할 것을 수차례 요구했고, 하토야마는 “이해한다”는 답변만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전 총리의 외교고문이던 오카모토 유키오(岡本行夫)는 “동맹에는 반드시 권리와 의무가 함께 존재한다”며 현 정권의 대응을 질타했다. 그는 “일본 입장에서 미국이 일본을 일방적으로 지켜주는 게 권리라고 하면 일본은 시설과 기지를 미국에 제공해 줄 의무가 있다”며 “일본이 이런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하면 미국으로서도 황당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도쿄=박소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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