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보안법, 과거 시각으로만 보지 말자

중앙일보

입력

국가보안법 개폐를 둘러싸고 국론이 심각하게 분열되고 있다. 필자는 두달 전 이 시평란을 통해 이미 이 문제를 다룬 적이 있지만 지금 상황에서 전반적으로 다시 이 문제를 정리할 필요를 느낀다. 먼저 말하고 싶은 점은 보안법 문제를 좀더 냉철하게 검토해보자는 것이다. 이 문제가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가 아니라 대단히 중대하기 때문에 오히려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접근하자는 것이다. 일부 정치인들이 선동적이고 격렬한 수사를 남발하는 것은 어떤 정치적 목적 때문일 것인데, 이런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보안법 문제에 관한 입장은 크게 둘로 갈린다. 하나는 폐기론이고 다른 하나는 존속론이다. 폐기론을 보면 그 안에도 다시 세 가지 견해로 나뉜다. 현행 보안법을 전면 폐기하자는 견해, 보안법을 없애되 형법 규정을 부분적으로 손질해 보완하자는 견해, 보안법을 없애고 대체입법을 하자는 견해가 그것이다. 한편 존속론에도 두 입장이 있다. 현행 보안법을 그대로 존치하자는 견해와 보안법의 일부 조항을 개정하자는 견해다. 이 다섯 입장 가운데 양 극단의 두 견해, 즉 보안법을 전면 폐기하는 것으로 끝내자는 견해와 반대로 일부 개정도 할 것 없이 그대로 존치하자는 견해는 일단 제쳐놓고 보아도 좋을 것 같다. 여론 조사나 정치권에서 이런 입장은 일부 소수에 그친다. 그렇다면 형법보완론.대체입법론.보안법 개정론이라는 세 입장이 현실적인 고려 대상이 된다. 대통령과 집권당 다수의 견해는 형법보완론이고 집권당 일부에서는 대체입법론을 거론하고 있다. 반면 제1야당은 보안법 개정론을 취하고 있다.

이 같은 현실적인 세 가지 대안은 서로 어떻게 다른가. 우선 형식적 차원에서 다르다. 형법보완론이나 대체입법론은 국가보안법이라는 이름의 법률을 없애자는 것이고, 보안법 개정론은 이를 존속시키자는 것이다. 이것은 상징적 차원의 대립이다. 한편 내용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 대체로 보면 현행 보안법의 내용에 가장 큰 변경을 가하자는 것이 형법보완론이고 그 다음이 대체입법론, 그리고 가장 적은 변경을 가하자는 것이 보안법 개정론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내용적으로 가장 큰 쟁점은 무엇인가. 이를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 북한을 대한민국의 입장에서 법적으로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다. 구체적으로 현행 보안법 제2조의 '반국가단체'의 개념정의 문제다. 이 조항에 의하면, "정부를 참칭하거나 국가를 변란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를 반국가단체라고 정의하고 있고, 대법원은 일관되게 북한정권이 반국가단체에 해당한다고 판결해 왔다. 여기에서 제기되는 문제는 이런 것이다. "정부를 참칭"하는 단체를 곧 반국가단체로 본다면 북한이 대남적화노선을 포기하고 남북 간에 평화가 정착되더라도 북한정권은 이미 그 존재 자체만으로 반국가단체라는 불법단체임을 면할 수 없지 않으냐는 것이다. 왜냐하면 헌법에서 한반도 전체를 대한민국 영토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점을 피하려면 "정부를 참칭하는" 단체를 반국가단체 개념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반국가단체의 개념을 "국가 변란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만으로 한정한다면, 판단하는 사람이나 때에 따라서 북한의 법적 지위가 일정치 않게 된다. 특히 하급법원 판사들 사이에 판단이 갈릴 것이고, 대법관 구성에 따라서는 대법원 판단도 흔들릴 것이다. 한마디로 혼란스러운 사태가 오게 된다.

내용상의 두번째 핵심 쟁점은 제7조의 "찬양.고무.선전"조항이다. 실질적으로 가장 중심적인 쟁점이다. 이것은 사상과 표현의 자유의 이름으로 친북세력의 활동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의 문제다. 형법규정만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으나, 그렇지 않다. 이 점은 대법원 판결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보안법이 악용됐던 과거의 경험만으로 이 법의 개폐문제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북한정권을 어떻게 보고 친북활동을 어디까지 풀어놓을 것인가는 현재와 미래의 문제다.

양 건 한양대 교수.헌법학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