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행정구역 개편 흐물흐물하게 할 거면 포기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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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행정구역 통합 대상 6곳 중 두 곳을 제외하기로 한 행정안전부의 결정은 잘못됐다. 주민 여론조사까지 거쳐 기세 좋게 발표해 놓곤 겨우 이틀 만에 번복해버리니 이런 물렁한 태도로 난제 중의 난제로 꼽히는 행정구역 통합을 어떻게 추진하겠다는 것인지 의문이 앞선다. 남은 4곳인들 제대로 추진되겠는가. 당초 대상을 선정하는 작업을 엉터리로 했다는 것인지, 아니면 정당하게 선정하고도 외부의 압력에 굴복해 뒤집은 것인지 궁금하다. 이런 식의 갈지(之)자 행보일 바엔 아예 포기하는 게 낫다.

100년이 넘게 유지돼온 현행 행정체계에 낭비적 요소가 많고,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이전 정부에서부터 공감대가 만들어져 있었다. 다만 워낙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문제여서 손을 못 대고 있었을 뿐이다. 지역구가 걸려 있는 국회의원들이나 통폐합으로 자리를 잃을지도 모를 지방자치단체 공무원과 각종 사회단체 임원들 모두 흔쾌히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다. 행정구역을 개편하겠다면 의당 그 정도의 반발은 예상했어야 한다.

그동안은 각종 지원책과 주민 여론을 앞세워 개편 작업이 순조롭게 추진되는 듯했다. 국회 지방행정체제개편특위도 230개 시·군·구를 2014년까지 50~60개로 통합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러던 것이 출발부터 뒤집기를 당해 정부가 신뢰를 잃어버렸다. 개편 작업이 총체적으로 추진력을 잃고 표류하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여권 고위 인사들마저 개인적인 이해관계를 앞세우는 마당에 통합 반대 세력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이번에 제외키로 한 두 곳은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과천-의왕)와 신성범 원내부대표(산청-함양-거창)의 지역구가 걸려 있는 곳이다. 안양·군포·의왕과 진주·산청이 통합되면 이들의 지역구가 쪼개진다. 지역구 변경에 따른 정치적 셈법이 복잡하겠지만 특정 정치인의 유·불리에 따라 주민의 의견을 뒤집을 순 없다. 행정구역치고 국회의원 선거구와 연계돼 있지 않은 곳이 어디 있는가. 정치인의 이해관계를 앞세우면 게리맨더링이 될 수밖에 없다. 여권 지도부부터 희생할 각오를 하고, 장관은 확고한 의지로 흔들림 없이 추진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