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허울뿐인 경제자유구역 대대적으로 수술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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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정부가 그동안 성과가 부진했던 경제자유구역(Free Economic Zone) 추진 방향을 대폭 수정하기로 했다. 외자 유치 실적이 미흡하고, 장기간 개발되지 않고 방치된 지구는 경제자유구역 지정을 해제해 일반산업단지로 전환하되, 차별화된 사업으로 실적을 올리는 지구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국비를 지원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그동안 경제자유구역 추진에 걸림돌이 돼 왔던 외국 교육기관과 외국 의료기관의 설립기준을 완화해 주기로 했다. 정부가 이처럼 경제자유구역을 대대적으로 손보기로 한 것은 만시지탄(晩時之嘆)의 감이 들지만 그나마 더 늦기 전에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경제자유구역은 노무현 정부 시절 외자 유치를 통해 동북아 경제 중심지로 도약한다며 국가 전략사업으로 추진했으나, 처음부터 정치 논리가 끼어들면서 성공이 의문시됐다. 각 지방에 나눠먹기식으로 경제자유구역을 지정하다 보니 외자 유치 실적은 저조한 반면 내국인을 상대로 한 아파트 건설사업만 성행했다. 당초 의도한 외국자본이나 외국기업은 오질 않고 덜렁 아파트 단지만 들어선 또 하나의 베드타운 신도시 개발사업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인천, 부산·진해, 광양, 황해(당진·아산·서산·평택·화성), 대구·경북, 새만금·군산 등 전국 각지에 산재한 6곳의 경제자유구역을 모두 합쳐봐야 순수 외자 유치 실적은 7년간 85억 달러에 불과하고, 그나마 95%가 부동산 개발과 레저산업에 집중돼 있다. 외국기업이 들어오는 직접투자(FDI)는 18억9000만 달러로 전체 FDI의 2.5%에 불과하다. 이래서는 경제자유구역이란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이렇게 된 데는 애당초 경제자유구역 지정을 남발하는 바람에 지역별 차별화에 실패한 데다, 외자 유치에 필요한 교육과 의료 등 편의시설에 대한 규제를 풀지 못한 탓이 크다. 이름만 경제자유구역이지 경제성도 자유도 없었던 것이다.

이번에 정부가 경제자유구역의 궤도를 수정하기로 한 것은 다행스럽지만 개선 방안의 실효성은 여전히 미흡하다. 우선 전국에 6곳이나 되는 경제자유구역을 그대로 두고 경쟁을 통해 지원을 차등화한다는 것은 문제를 당분간 덮어두는 효과는 있겠지만 결코 근본적인 해결 방안이 될 수 없다. 진정 경제자유구역을 중국 상하이 푸둥(浦東)신구나 싱가포르와 경쟁할 만한 동북아의 경제 중심지로 키울 생각이라면 차제에 아예 숫자를 줄여 국가사업으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또 개발계획 변경을 엄격히 제한한다고 했으나 그것만으로는 아파트 단지로 전용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국제적인 경쟁력이 생기지 않는다. 이와 함께 외국 교육기관과 의료기관 설립 역시 이번에도 검토 수준에 머문다면 또다시 지지부진해질 공산이 크다.

정부는 이왕 손보기로 한 이상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기 바란다. 이번에도 지역정서를 의식해 경제자유구역을 확실하게 정비하지 못한다면 세종시나 혁신도시처럼 국가적 낭비와 논란의 불쏘시개가 될 우려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