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연휴 볼만한 우리영화] '반칙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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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말단 은행원인 임대호(송강호). 예금 유치 실적은 바닥을 기고 출근 시간도 꼴찌다. 당연히 상사의 눈 밖에 나 회사 생활이 고달프다.

터벅터벅 힘없이 발걸음을 옮기던 어느 날 레슬링 체육관이 눈에 들어온다. 마음이 동해 문을 두드린 그에게 관장은 반칙전문 프로레슬러가 돼 보라는 권유를 한다.

어릴 때 반칙 전문인 '울트라 타이거 마스크' 를 동경했던 그는 흔쾌히 응한다. 이제 따분한 그의 일상에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조용한 가족' 으로 '코믹 잔혹극' 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냈던 김지운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도 관객의 허를 찌르는 기묘한 상상력을 발휘한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복장을 하고 송강호가 링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 반칙 도구를 엉뚱하게 사용해 상대를 놀라게 하는 장면 등 배꼽을 잡는 장치들이 많다.

김 감독은 직장에서 쫓겨나는 샐러리맨들의 자화상이라며 '슬픈 코미디' 로 봐 주기를 바라지만 웃음 그 자체로도 충분히 통쾌하다. 오히려 중간중간 들어간 '슬픈 장면' 들이 영화의 맥을 잘라 아쉽다.

송강호의 연기는 가장 제격이라고 할 만큼 영화에 잘 어울리고 '넘버 3' 에서 재털이 역으로 화제를 뿌렸던 박상면도 그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영화의 맛을 살려 냈다. 주제가를 어어부 프로젝트에게 맡긴 것도 김 감독의 '탁월한' 선택으로 보인다.

이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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