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박경용 '겨울저녁'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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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불씨만이 걸린 외등, 불빛 앓는 길목에

몇개의 한쌍 사랑이 몸만 챙겨입고서는

무거워 거추장스런 넋은 놓고 가버리고,

그 뒤를 두런두런 시골에서 왔는가

한때의 나무들이 몸일랑 벗어두고

앞서간 사랑이 남긴 넋을 입고 가버렸다.

-박경용(60) '겨울저녁' 중

사람에게 있어 몸은 무엇이고 넋은 무엇인가. 아니 사람뿐만 아니라 나무들도 몸이 따로, 넋이 따로인가. 박경용은 겨울저녁 도심의 불빛 속에서 몸만 챙겨입고 가버린 한쌍 사랑들을 눈여겨 본다. 그리고는 이내 시골에서 왔는가 싶은 한떼의 나무들이 오히려 몸은 벗어두고 넋을 입고 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 몸과 넋 사이, 사랑과 나무 사이에서 오늘 우리가 넋이 없는 '사랑' 에 대한 회초리가 시조의 가락으로 매섭게 감겨온다.

이근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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