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TV애니 의무방영제 '있으나 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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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을 살리자' 는 구호 아래 시행 중인 방송사별 국산 만화영화 의무방영제도의 취지가 제대로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문화관광부는 98년말 방송 3사에 국산 만화영화의 제작을 유도하기 위해 의무 방영 비율을 지정해 놓았다. 현재 KBS와 MBC는 전체 방송시간의 1.1%(주당 70분), SBS는 0.8%(주당 50분)를 국산 만화영화에 할당하게끔 돼 있다.

오랫동안 하청 제작에만 매달려온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의 피폐해진 경쟁력을 TV 시리즈물 제작으로 활성화하자는 의도였다.

문제는 의무 방영 비율에 재방영 분도 고스란히 포함된다는 점. 쉽게 말해 이미 제작됐던 국산 만화영화를 다시 방영해도 괜찮고, 새로 제작한 국산물을 두번 내보내도 의무 방영 비율을 채울 수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방송사도 고충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해외 애니메이션을 수입하면 편당 2백만~3백만원이면 충분한데 비해 자체 제작시에는 7천만~8천만원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청률도 비슷해 방송 광고에 미치는 영향력은 별 차이가 없다.

하지만 일본 애니메이션 경쟁력의 비밀이 수십년간 TV 시리즈물을 제작하며 축적한 노하우에 있음을 간과해선 안된다. 경쟁력만 길러진다면 자체 제작비는 그리 비싼 수업료가 아니다. 드라마 1회분에도 1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되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문화관광부는 올해 안에 일본 대중문화에 대한 3차 개방을 실시할 방침이다.1.2차 개방에 대한 결과 분석을 삼성경제연구소에 이미 의뢰해 놓은 상태다. 4월쯤 나오는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추가 개방 시기와 개방 종목도 결정한다는 것.

일본 애니메이션은 2차 추가 개방 때부터 포함 여부를 놓고 논란이 있었다. 극장용 판권을 이미 확보한 수입사 측의 강력한 개방 요구가 있었던 것. 하지만 개방 후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이 초토화될 것이란 우려 때문에 제외됐었다.시간을 벌면서 경쟁력을 키우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실질적인 경쟁력은 제자리인 채 시간만 흘러가고 있다.이미 제작된 만화영화의 재방영 분에 대해서 방영 시간의 50% 정도만 의무 비율에 포함시킨다는 '재방영 차등 인정제' 등의 도입이 시급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대공세가 시작되기 전에 최대한 자생력을 길러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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