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북한 '유해외교' 뭘 뜻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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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북한이 북.미 고위급 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한 가운데 4백구 이상의 미군 유해(遺骸)를 조건없이 미국에 송환키로 했다.

지난해 12월 베를린 북.미 유해협상에서 북한이 유해 발굴과 인도적 지원의 연계를 고집해 협상이 결렬됐음을 감안하면 큰 변화의 조짐이다.

북한은 그동안 유해협상을 대미(對美)외교의 지렛대로 삼아왔다.

북한은 주한 유엔사령부를 통한 간접 인도 대신 직접 인도 방식을 요구한다거나 발굴 보상비 20여만달러를 상향 조정해달라는 등 미국의 애를 태워왔다.

때문에 북한이 조건없는 유해 송환의 뜻을 밝혔다고는 하지만, '유해 1구에 얼마' 식의 흥정은 아니더라도 인도적 지원을 요청할 가능성은 아직도 남아 있다.

한국전쟁에서 실종된 미군은 8천2백여명이고, 이중 발굴 가능한 유해는 1천~3천5백구로 미 국방부 관리들이 추정하고 있다.

북한은 평안북도 토지정리 과정에서 4백구 이상을 찾아냈다고 밝혔는데 올해 평북.황해남도 등지에서 토지정리를 할 예정이기 때문에 발굴 유해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클린턴 행정부는 올해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유해 송환에 관심을 보일 것 같다.

김정일(金正日)정권도 미 공화당 부시 후보 진영 외교 참모들의 대북 강경자세를 우려해 클린턴 행정부 시기에 북.미 관계를 급 진전시킬 뜻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북한은 조건없는 유해 송환을 통해 대미 외교를 가속화하면서 뭔가 대가를 취하고 북.일 수교 회담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려는 의도가 실려 있다고 풀이할 수 있다.

지금 북한은 이탈리아와의 수교에서 볼 수 있듯 전방위(全方位)실리(實利)외교에 나서고 있다.

우리는 북한이 국제사회에 적극 진출하는 것을 환영하면서 남북관계 개선 및 국군 포로 송환 문제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태도를 취할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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