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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은 사양산업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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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에 가입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판단내리는 문제는 생각보다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고려해야 할 점이 의외로 많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노조활동이 직장생활에 득이 될까 실이 될까’ 하는 간단한 질문에 답을 찾는 일이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먼저 노조활동을 할 경우에 득이 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적어보았다. 첫째, 회사 내 의사결정의 한 축인 노조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둘째, 노조에서 조금 더 적극적으로 활동할 경우에 사내 네트워크가 강해진다. 셋째, 노조 간부까지 할 수 있다면, 사내 지명도를 높일 수 있다. 넷째, 노조 간부로 회사 전체 경영에 관한 식견을 키울 수 있다. 다섯째, 노조 간부가 된 이후에 상급노조 활동까지 하면서 노동계의 리더로 클 수 있다.

다음으로는 실이 될 수 있는 것들도 하나씩 적어보았다. 첫째, 단체행동에 보조를 맞춰야 하기 때문에, 번거로운 일이 많아진다. 둘째, 너무 나서면 경영진에 찍힐 수 있다. 셋째, 노조 간부를 할 경우에, 차후 관리직에 올라간 이후 승진과정에서도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 넷째, 노조 간부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지 못할 경우에는, 사내에서 평판이 나빠지면서 오히려 적이 더 많아질 수도 있다. 다섯째, 노조 간부로 장기간 생활하다가 그만두면 권력금단 현상으로 회사생활에 적응을 잘 못할 수도 있다.

여러분도 만일 노동조합 가입을 고민하고 있다면, 점검표를 한 번 만들어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우리의 김C도 위와 같은 점검표를 적고 보니, 노조활동은 상대가 있는 정치활동이라는 점에 생각이 미치면서, 경영진의 태도 역시 중대한 환경적 변수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문제는 그 분석 역시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경영진의 속을 뒤집어 볼 수도 없었지만, 양 측면이 공존하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사탕과 채찍!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경영진은 노조 간부 출신에 대해 양면적인 접근을 하고 있지 않다던가?

예컨대 이런 식이다. 노조 간부 시절 경영진과 갈등을 적게 겪은, 비교적 우호적이라고 판단되는 노조 간부 출신에 대해서는 우대를 하는가 하면, 아예 노조담당이나 인사담당을 맡겨, 사내의 우호적인 세력 비중을 늘리려 노력한다. 반면에, 노조 간부 시절 경영진과 대립각을 세웠던 사람들에 대해서는 본보기 차원에서 왕따를 시켜버린다.

그런데 조사를 해보니 이것도 모든 회사가 동일한 것이 아니어서, 사주가 경영까지 장악한 회사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노조 출신을 배제하는 모습이 더 두드러진 반면에 - 사내 독재가 더 강하다는 뜻이다 - 전문 경영인이 CEO를 맡고 있는 회사, 특히 공기업처럼 주인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 기업은 상대적으로 노조 출신에 대해 배려를 많이 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도 알게 되었다.

김C의 회사는? 본국에서는 그렇지 않지만 해외에서는 노조활동에 대해 가혹한 편에 속한다는 소문이었다. 당연히 노동조합 간부 출신들이 관리직에 올라간 이후에 별로 좋은 대우를 받지 못하는 편에 속했다. 그렇다면 그가 내린 답은? 노동조합에 ‘가입은 하되, 간부 활동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김C의 경우에는 노조 가입을 선택했지만, 최근에는 노동조합 가입을 꺼리는 신입사원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대규모 청년실업 사태의 파고를 넘어 살벌한 경쟁률을 뚫고 입사한 마당에, 잘못 발을 디뎠다가 '별'(이사)도 한번 못 달아보고 전사하기는 싫다는 의식이 팽배한 때문이다.

요즘 신입사원들이 본래 개인주의가 강한 세대인 점도 중요한 변수다. 걍~ 각자의 역량에 따라 경쟁하고 자기 몫을 챙기면 그만이지 촌스럽게 머리에 띠 두르고 똑같이 대우해달라고 말하긴 싫다는 것이 이들의 기본정서인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세계화라는 구조적 변수도 더해지고 있다는 평가다. 조금 어렵게 표현하자면, 자본의 세계화는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반면에, 노동운동의 세계화는 더디기 때문이라나? 아니? 이런 대목에서 세계화가 등장하다니, 살짝 어렵긴 하지만, 설명은 이렇다.

외국인 사주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이들은 본사 노동조합에 대해서는 차마 외면할 수 없는 파트너로서 대우를 해주는 반면에, 해외지사 노동조합에 대해서는 홀대를 하곤 하는데, 그렇다고 본사 노조와 해외지사 노조가 연대활동을 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대우 면에서 불균등한 현상이 나타나도 어쩌질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 기업 중에도 해외에 나가서 그런 경우가 있으니 십분 이해가 될 것이다.

이런 경향성과 구조적 한계의 영향 때문인지 노동조합의 조직률은 지속적으로 떨어져왔고, 조합원 수에도 큰 변화가 없다. 전반적으로 제조업체 일자리가 줄어드는 추세를 고려하면, 그나마 이 정도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신통할 정도다. 그래서 노조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런 냉소적 발언도 없지 않다고 한다. ‘노동조합은 사양산업이다!’

진보적 지식인들이 노동운동에서 손을 떼면서 노동문제에 관한 연구가 사양산업으로 전락했다는 말은 들어봤지만, 노동조합 본체가 사양산업이라는 말까지 나올 줄이야! 뭐~ 그렇다고 노동조합의 존재이유가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런 표현은 아마도 노동조합이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세대를 맞아 위기를 맞고 있다는 뜻이 강할 것이다.

노동조합 활동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 노조활동을 한다고 했을 때, 간부 활동까지 할 것이냐 말 것이냐는 결국 각자가 선택할 문제다.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 역시 온전히 각자의 몫이다. 하지만, 가입 여부를 결정하기에 앞서 아래 ‘8대 사항 점검표’를 참고해서 찬찬히 따져보는 일은 필요할 듯하다.

이종훈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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