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폭소의 클래식, 그 뒤에 남은 무거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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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공연 도중 휴대전화가 울린다면? 필경 따가운 눈총이 쏠릴 것이다. 그럼 아예 오케스트라가 벨소리를 연주하면 어떨까?

“오케스트라 공연장에서 울려도 괜찮은 벨소리를 다운 받으세요!” 10일 오후 콘서트홀에 ‘불경스러운’ 장내 방송이 울렸다.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62)와 그가 이끄는 ‘크레메라타 발티카’는 익숙한 벨소리를 연주했다.

“모차르트 스타일을 원하시면 1번을 눌러주세요.” 연주자들은 경쾌하고 짧은 음표로 음악을 바꿨다. “쇤베르크는 3번입니다.” 깨진 듯한 불협화음에 청중의 웃음이 폭발했다. 휴대전화가 울릴까 경직된 음악회장, 작곡가들의 상투적 어법에 관한 유머였다.

‘그’ 기돈 크레머가 이런 공연을? 크레머는 1967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3위 이후 차이콥스키·파가니니 등 유력 대회를 휩쓴, 세계에서 손꼽히는 연주자다. 이날 열린 공연 ‘기돈 크레머 되기’는 ‘거장’ 크레머를 유머로 뒤집었다.

“유명 연주자가 되는 방법 셋을 알려주지. 웃으면서, 누구나 아는 곡을, 쉽게 하는 듯 연주하면 돼.” “자, 너의 데뷔 앨범 녹음을 하자. 실수한 부분은 기계로 고치면 되니 걱정 말고, 테이크 745!” 무대 위에 연주자를 놓고 이 같은 대사로 상황을 만든 후 거기에 맞는 클래식 음악들을 연주하는 형식의 공연이었다.

크레머와 함께 한 이들은 알렉세이 이구데스만(바이올린)과 주형기(피아노)씨다. 36세 동갑인 이들은 영국 예후디 메뉴인 음악 학교에서 만나 클래식 코미디를 시작했다. “음악은 좋지만 갑갑함이 싫었다”는 것이 한국계 영국인인 주씨의 말이다. 그래서 이들은 말러의 교향곡, 하이든의 ‘십자가 위의 일곱 말씀’, 피아졸라의 탱고 등을 연주하면서도 청중을 웃길 수 있는 공연을 시작했다. 유튜브에서의 인기 이후 에마누엘 액스·버나드 하이팅크 등 권위있는 음악가와의 작업이 잇달았다.

과장된 몸동작과 익살스러운 대사는 클래식으로 만든 ‘개그 콘서트’였지만 메시지엔 깊이가 있었다. 상업화된 음악계와 길을 잃은 연주자를 놓고 크레머는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느냐”는 대사를 던졌다. 폭소가 휩쓸고 간 객석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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