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브루투수, 너마저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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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브루투스, 너마저도!"

아들처럼 아끼던 브루투스를 암살단 속에서 발견한 시저가 최후의 순간에 외친 말로 전해진다.

인간적 배신감을 표출한 것으로 알려진 말이지만 학자들은 여기서 더 구체적인 정치적 의미를 찾기도 한다.

시저는 로마의 오랜 공화정 전통을 끝장낸 인물이다.

시저가 루비콘 강을 건널 때(BC 49) 공화주의자 브루투스는 폼페이우스 편에 서서 시저에 맞서 싸웠다.

승리를 거둔 시저는 옛 적들에게 최대한 관용을 베풀었고, 특히 브루투스에게는 각별한 신뢰와 애정을 베풀었다.

그런데 브루투스는 5년 후 암살자 대열에 끼었던 것이다.

공화정 체제는 시저가 등장하기 오래 전부터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다.

포에니전쟁(BC 264~146) 승리로 유일한 슈퍼파워가 된 로마로서는 피할 길 없는 운명이었다고 학자들은 풀이한다.

경제규모의 급격한 확장 속에서 공화정의 기반이던 시민층은 몰락하고 귀족층의 위상 역시 식민지 총독들의 실권이 증대하는 데 가려지게 됐다.

이에 따라 공화정 체제의 껍데기는 남아있어도 알맹이는 변질을 겪는다.

BC 2세기말부터는 빈민층의 모병(募兵)으로 만든 상비군이 종래의 시민징집제를 대치하고, 집정관의 연임이 허용돼 원로원을 능가하는 권력을 갖게 된다.

BC 1세기에 들어와서는 로마 이외의 도시에도 시민권이 확장돼 체제의 기반이 통째로 바뀐다.

시저는 독재권 확립을 시대의 요청으로 보고 껍데기만 남아 있는 공화정을 청산하는 일에 자신있게 나섰다.

공화정에 향수를 느끼는 전통주의자들이 승복하리라는 자신감을 가졌기에 초기의 반대자들에 대해 관대할 수 있었다.

브루투스 같은 유망한 후진들을 적으로 못박아 파멸시키기보다 포섭해 장래를 맡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브루투스는 시저보다 공화정을 더 사랑했다.

그 결과는 자신의 패가망신은 물론 공화정의 철저한 파괴와 제정(帝政) 성립(BC 31)을 더 앞당긴 것이었다.

그래서 시저의 마지막 말을 인간적 배신감보다 정치적 미숙성을 한탄한 것으로 보기도 하는 것이다.

총선연대의 공천부적격자 발표로 타격을 받은 자민련은 민주당에 큰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그들이 제기하는 야합설까지는 믿기 어려워도 대통령의 근일 태도가 이 발표에 큰 힘을 실어준 것은 사실이다.

로마의 역사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시저와 브루투스, 누가 시대변화에 순응한 편이었는지 살필 수 있다.

한편 오늘 우리의 정치는 그 흐름을 잘라 말하기 어렵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큰 변화가 필요하고 그 속에서는 많은 배신이 있으리라는 것이다.

총선연대 명단이 배신행위에 너그러웠다는 평이 있다.

정치계에 더 많은 배신이 필요하다고 본 것일까. 이런 말만 나오게 되지 않기 바란다.

"시민단체, 너마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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