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그때를 아십니까' 건립한 채창운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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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요즘의 대형 평면TV 못지 않게 호사스러웠던 사각다리TV, 월남전 당시 날아다니는 총알도 비껴갔다는 '행운의 상징' 지퍼라이터, 그리고 아버지 밥상에 오른 두꺼비 그림의 소주….

사오십대라면 한번쯤 미소를 머금을 만한 이런 물건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채창운(蔡昌云.54)씨는 20여년간 모아온 이런 향수어린 물품들을 최근 사재(私財)를 털어 마련한 박물관에 고스란히 옮겨놓았다.

'그때를 아십니까' 라는 이름으로 경기도 일산에 자리잡은 이 박물관엔 라이터 5백여점, 각국의 술병 2천여점, 전화기 4백50여점, TV.라디오 5백여점 등이 전시돼 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상경, 신문배달.판매 등의 일로 생계를 꾸리던 蔡씨가 '물건' 을 모으기 시작한 것은 20대 중반부터.

"길거리를 지나다가 예쁜 술병이 나뒹구는 것을 보고는 '저것들을 모아두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부터 하나하나 모은 것들이 오늘날 박물관의 기초가 됐지요. "

갖가지 기이한 모양의 술병을 보노라면 蔡씨가 대단한 애주가일 것 같지만 정작 蔡씨는 술을 입에도 대지 않는다.

"술먹고 놀음하는 사람에게 저같은 취미를 권하고 싶습니다. 술먹을 돈으로 수집품 하나 더 사야지 하는 욕심에 저절로 술이 끊어질걸요. "

그동안의 수집사(收集史)도 구구절절하다.

70년대 중반만 해도 길거리엔 사람들이 버린 물건이 넘쳐나 '수집' 도 수월한 편이었지만 80년대 중반부터는 돈을 줘도 물건을 내놓는 사람이 드물어 꽤나 힘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蔡씨는 포기하는 법 없이 청계천 8가와 황학동시장은 물론 지방 이곳저곳을 이잡듯 뒤지며 괜찮은 물건을 끝내 손에 넣었다.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한 물품들이 집안 가득 쌓이자 蔡씨는 다섯번이나 이사를 다녀야 했다.

5년전부터 살던 성북동 집은 1백20평짜리 전세지만 사람이 산다기 보다는 물건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표현이 옳을 듯하다.

15년전부터 박물관을 세우는 일을 꿈꿔왔다는 蔡씨는 "이 물건들은 제 것이 아닙니다.

이곳에 들르는 여러분들의 것이죠" 라며 많은 사람이 이곳에 들러 향수를 듬뿍 담아가기를 권했다.

0344-977-6700.

글.사진〓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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