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생명] 3. 늘어나는 수명- 반대의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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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21세기 인류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인간수명의 혁명적 연장이다.

의학과 생명공학의 발전에 힘입어 1백세를 훨씬 넘는 삶이 인위적 선택의 문제로 다가오리라는 것이다.

태아 성별의 조작, 인간 생체의 복제와 함께 인간수명의 생체공학적 연장은 기본적 인간관과 인간사회의 질서를 그 근저에서 뒤흔들어 놓을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천부인권설적 인간관은 치명적으로 도전받을 것이며 문명발전의 준거로서 인간 존엄성은 크게 훼손될 것이다.

생명의 절대가치를 실현한다는 이유로 사회적 지원을 받았던 의학과 생명과학은 구체적 인간개체들의 장수욕구를 실현시켜주는 대신 경제적 이득을 챙기는 서비스산업으로 지위가 바뀔 것이다.

생명이 귀한 것은 생명이 유한하기 때문이고 장수가 축복받는 것은 장수가 희소하기 때문인데 인간수명의 선택적 연장이 가능한 상황에서 이러한 가치는 유지하기가 어렵다.

사회질서의 차원에서도 한정된 노년기를 전제로 설정된 세대간의 집단적 계약관계가 지탱되기 어렵다.

기본적으로 비생산적인 혹은 피부양적인 연령층인 노인들을 사회 전체가 집단적으로 보살피기 위해서는 젊은 인구의 기여와 희생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장수의 보편화로 노인인구 비율이 청.장년 인구의 비율과 맞먹거나 넘어서는 상황이 온다면 그러한 기여와 희생으로 문제해결이 불가능한 것이다.

결국 급격히 연장되는 노년기를 노인들 자신이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젊었을 때 자녀양육에 대한 투자를 줄이고 늙고 난 후 지위와 자산을 젊은 세대에 이양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확산될 것이다.

이러한 이기적 노인집단의 존재는 젊은 세대와의 정신적.경제적.정치적 갈등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사실 이 가능성은 현실이 되어 이미 많은 사회들에서 서서히 그 조짐이 드러나고 있다.

보편적 장수시대는 이러한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예측보다 훨씬 빨리 다가올지 모른다.

적절한 대응책은 따라서 보편적 장수를 받아들이되 급격히 늘어나는 노인들의 새로운 사회적 자리매김을 추구하는 것이다.

보편적 장수에 의해 엄청난 규모와 비율의 노인인구가 존재하는 현상은 어차피 인류역사상 처음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해 사회나 개인 모두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대처가 필요하다.

소비집단에 머무르는 현대적 노년관은 앞으로 거의 모두가 고령노인이 되는 사회에서는 부작용만 초래할 뿐이다.

젊은 세대를 통솔하지만 기본적으로 그들의 노동에 의존하는 전통적 노년관이나 젊은 세대 중심의 사회경제체제에 노인들이 얹혀사는 한 사회적 역동성은 떨어져 사회적 혁신과 진보는 매우 어려워질 지 모른다.

따라서 기존의 연령분업을 혁신적으로 바꾸고 새로운 세대간의 계약을 만들어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에 걸맞은 사회적 보장 장치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생명의 연장이 가져다줄 장수사회는 인간사회에 새로운 갈등만을 만들어낼 뿐 결코 개인에게도 축복이 되지 못할 것이다.

장경섭(서울대 교수.가족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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