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일본의 야심찬 21세기 구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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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일본 총리 자문기구인 '21세기 일본의 구상' 간담회가 그제 '내놓은 보고서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많다.

연말연시를 우리처럼 떠들썩한 새 천년 축하행사도 열지 않은 채 조용히 지낸 일본이 '무게있고 야심에 찬 국가전략 기획서를 내놓았다.

일본의 보고서는 절박한 위기의식의 산물이다. "남을 쫓아 따라잡는 종전 방식이 사회를 경직시켜 일본의 활력을 꺾어놓았다. 이대로는 쇠퇴한다. 변혁이 불가피하다" 는 인식 아래 국가와 개인의 관계를 비롯한 사회 시스템.의식 전반의 철저한 개혁을 촉구하고 있다.

보고서는 그 열쇠로 과감한 글로벌화(化)와 개인의 창의력 북돋우기를 제시했다. 종전의 '통치' 개념을 이해당사자가 함께 참여한다는 의미로 '협치(協治)' 로 바꾸고, 이민정책을 대폭 완화하며, 나아가 영어를 제2공용어로 삼자고 권고한 것은 관(官)위주 위계질서와 함께 '안' 과 '밖' 의 구별에 집착했던 일본인이 본격적으로 국제화에 발벗고 나선 신호로 보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정부의 역할을 '민간이 할 수 없는 것' 만으로 한정하고 법조인구의 상한선을 철폐해 사법의 국제경쟁력을 높이자는 주장들은 우리도 귀담아 들을 만하다.

한편 관심끄는 것은 집단적 자위권 금지규정을 포함한 현행헌법 개정논의를 활성화하자는 대목이다.

일본 국회의 '헌법조사회' 가 오늘 활동을 시작하는 등 일본 사회의 전반적 흐름이 '개헌분위기' 로 비치는 것을 주변국들은 예의주시하고 있다.

보고서 표현대로 일본의 국익이 세계의 공익(公益)과 일치하기 위한 첫 걸음은 역시 주변국과의 든든한 신뢰구축이다.

일본은 21세기 국가전략을 짜고 있는데 우린 무엇을 하고 있는가. 요란스런 밀레니엄 행사는 1회용 파티로 끝났고 우린 다시금 낡은 정치의 틀 속에서 소모적 정쟁에만 골몰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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