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선거법 이것만은 바로잡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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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여야간 '담합 선거법' 이 여론의 거센 반발에 부닥치자 정치권에서 뒤늦게 정치 관련법안 재협상에 나섰다.

꼭 이렇게 민심이 분노를 폭발시켜야만 움직일 정도로 우리 정치권이 둔감(鈍感)했고 몰염치했던지 새삼 혀를 차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시간이 촉박하지만 총선 전 여야 정당이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개악(改惡) 사례들을 몇가지 제시, 주문코자 한다.

우선 국민 일반의 바람이나 의회민주주의 발전과는 아무 상관없이 기존 정당과 현역 의원들의 기득권 유지.확대에만 초점을 맞춘 조항들을 고쳐야 한다.

여야가 사흘 전 합의한 선거법 개정안은 의원 정수와 선거구 책정부터가 문제였다. 원칙도 명분도 무시하고 꼼수와 뒷거래로 미봉해 놓았으니 같은 당내에서조차 조율이 잘 안되는 건 당연하다.

인구 상한선을 외면하고 도농(都農)복합선거구라는 궁색한 논리로 살려 놓은 몇몇 지역구는 당초 원칙대로 통합해야 마땅하다고 판단한다. 나아가 인구 기준을 지난해 9월로 삼은 변칙을 취소하고 현행 선거법 제4조가 규정한 '최근의 인구통계' , 즉 지난해 말을 기준으로 새로 선거구를 획정해야 옳다.

낡은 통계를 적용한 덕분에 독립 선거구가 된 곳들은 당연히 합치든가 다른 지역구에 흡수돼야 한다. 여야가 언제는 의원 정수를 30% 삭감하느니, 2백70명선으로 줄이느니 공언하다가 이제 와서 치졸한 편법들을 동원해 지역구를 오히려 5석이나 늘려 놓았으니 누구도 납득하지 못하는 것이다.

비례대표 의석배분 기준 하한선을 의석수 5석 또는 유효투표 총수의 5%로 규정한 것도 신생.군소정당의 의회 진출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든 기득권 위주 조항에 속한다.

선진국들과 비교해도 지나친 커트라인인 만큼 이번 기회에 완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야가 선거공영제를 확대한다며 선거운동 국고 보조 항목을 대폭 늘리고, 총선.대선이 있는 해의 유권자 부담금을 50%나 인상한 것은 선거공영제의 관리공영 측면은 기피.외면하면서 비용공영의 혜택만 노린 조치로 보인다.

여야는 이와 대조적으로 선거사범 공소시효를 현행 6개월에서 4개월로 줄여 합법.공정선거 의지를 의심받게끔 자초했는데, 이것 역시 최소한 원래대로 돌려 놓아야 한다.

우리는 정치권이 시민단체 등의 낙천.낙선운동을 불법이라고 비난하기에 앞서 단체의 선거운동 참여를 금지한 현행 선거법 제87조를 손보는 것이 온당하다고 주장해 왔다. 정치적 입장에 따라 공정성.신뢰성 면에서 불안감이나 의구심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대승적 관점에서 차제에 폐지하는 것이 낫다.

그것이 유권자의 알 권리 신장이나 노조단체와의 형평성, 시대의 흐름과 부합한다고 보며, 대신 선거 관련법의 다른 규제조항 같은 장치들로 보완하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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