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업 노하우] KSS해운 박종규 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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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KSS해운(옛 한국특수선)은 창사 30주년(1999년 12월 31일)을 기념해 올초 색다른 사사(社史)를 펴냈다.

책 표지부터 특이하다. 초라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의 흰색 표지 위엔 여느 기업이 썼을 법한 '○○○ 30년사' 대신 '손해봐도 차라리 원칙을 지킨다' 는 경구가 제목을 대신했다.

책 내용은 더욱 파격적이다. 창업주 박종규(朴鐘圭.65)회장이 회사와 함께 울고 웃은 30년동안의 성공.실패담이 다큐멘터리 드라마처럼 엮어져 있다.

이 책을 정리한 자유기고가 차익종씨는 "현재를 합리화하기 위해 과거를 미화하는 대부분의 사사와는 딴판" 이라며 "朴회장의 우직스런 투명경영 신조와 솔직함이 책의 제작과정에 그대로 배어 있다" 고 평했다.

朴회장은 "실패한 일, 부끄러운 일들을 종업원들에게 있는 그대로 알려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게 하고 싶었다" 고 말했다.

해운업계에서 KSS해운은 별난 '5무(無)기업' 으로 통한다. 리베이트.밀수.회계장부 조작 같은 불법행위가 없고 인맥이 없으며 그럴 듯한 사시(社是)하나 없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朴회장이 93년 '바른경제동인회' 라는 기업인 운동단체의 결성을 주도한 점도 같은 맥락이다.

화학제품.액화석유가스.암모니아 등 위험물질 운송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KSS해운은 타협을 모르는 경영 스타일 때문에 지난해 매출 7백억원의 중소업체 수준에 머물고 있지만 외환위기에도 불구하고 3년째 착실한 흑자를 쌓고 있다. KSS해운은 2001년에 기업을 공개해 증시에 상장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 리베이트는 파멸의 주범〓리베이트를 위해 비자금을 조성해야 하고 2중 장부가 생긴다. 자연히 직원들이 오염되고 회사를 갉아먹는다. 나는 화물주가 리베이트를 요구하면 운임을 그만큼 깎아주겠다고 버텨 끝내 관철시켰다.

여기엔 경영주의 의지가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독보적인 기술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 종업원 지주제는 활력소〓69년 창업 초기부터 종업원지주제를 도입했다. 임직원이 주주가 되지 않으면 주인의식은 요원하다. KSS해운은 직원들이 알아서 하는 회사고 나는 조언자일 따름이란 생각을 잊은 적이 없다.

◇ 기업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말아야〓오너와 피가 섞이지 않았더라도 최고경영자가 될 수 있는 직장인지 여부가 종업원 주인의식의 기초다. (그의 세 아들은 회사일에 일절 간여하지 않고 미국 현지회사를 다니거나 국내 중소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

◇ 경영권을 넘기면 사라져야〓경영을 맡긴 다음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 가 있어야 한다. 회장실과 사장실이 같은 층에 붙어 있으면 창업주는 자꾸 간섭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고 사장도 창업주의 눈치를 살피게 된다. 대통령이 각료에 권한을 대폭 위임하고 싶으면 대전청사에 내려가 있으라고 권하고 싶다.

시어머니가 살림을 며느리에게 맡겨도 같이 살면 마음대로 안된다. (그는 94년 1월 경영을 전문 경영인에게 위임한 뒤 사무실을 임대사옥내 외진 구석의 두평 남짓한 방으로 옮겼다. )

홍승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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