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땅서 돌아본 지난날 시로 표현…김응교 첫 시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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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모국어는 배부른 밥상이다/동태찌게 해드릴까요, 한양식당 주인 한 마디에 벌써 얼큰/모국어는 즐거운 가족이다/끼니 거르지 마요, 아내의 전화 한 통에 온 공기가 싱글" (시 '얼큰싱글' 전문)

4년째 일본에 머물고 있는 시인 김응교(38)씨에게 모국어는 밥이나 가족과 같은 가장 소중한 것이리라.

그는 연세대에서 국문학 박사학위를 받은뒤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早稻田)대학에서 한국문학과 비교문화를 가르치는 객원교수가 됐다.

87년에 등단한 시인이 일본생활 4년만에 그리운 모국어를 깎고 다듬어 첫 시집 '씨앗/통조림' (하늘연못.5천원)을 내놓았다.

일본으로 가기 전 국문학과 학생으로 소설과 문학기행.인물평전.번역 등으로 다양하게 활동하느라 정작 시집을 내지 못했던 시인이 뒤늦게 이국에서 꿈을 이룬 것이다.

시집은 일본에서의 체험(1부).일상적 삶과 사물(2부).옥중체험(3부.80년대말 민주화 운동으로 구속).유년시절 회고(4부) 등으로 꾸며졌다.

1부에서 시인은 이국에서 느끼는 "무릎 관절로 찌르르 포복해오는 외로움" (시 '외짝구두' 중)과 "욕망의 쓰레기까지 철저히 재활용하는 나라" (시 '동경에 가신다구요' 중)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

2.3.4부는 그가 살아온 삶의 흔적을 짙게 담고있다.

미군부대 근처에서 자란 어린시절이나 수인(囚人)으로 보낸 젊은 날이 결코 밝지 않지만 시인은 일그러진 삶 속에서 인간적 온기를 찾아내고 있다.

한때 신학을 전공한 시인의 긍정적 인생관이 느껴진다.

제목 '씨앗' 은 생명을 상징하는 시인의 첫번째 화두.

그의 시는 어렵지 않다.

아름답지 않은 세상을 아름답게 꿈꾸는 착한 마음이 고전적인 시적 상상력으로 전해져온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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