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전 말단 공무원 지역기관장돼 '해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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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수십년후 지역 기관장으로 다시 만나 봉사행정을 함께 펼치자. " 지난 72년 6, 7월 경기도 연천군 군남면사무소와 군남파출소로 초임 발령을 받았던 말단 공무원 2명의 이 같은 꿈이 차곡차곡 이뤄지고 있다.

이종만(李鍾滿.55.행정사무관)군남면장과 김영원(金永元.54.경사)군남파출소장이 그 주인공. 1998년 4월 金소장이 먼저 부임하고 이어 같은해 10월 李면장이 발령을 받으면서 이들은 27년만에 말단 때 굳게한 '약속' 을 지켜나갈 수 있었다.

이들은 초임 당시 말단공무원의 어려움을 서로 위로하며 지냈다. 특히 경남 함양 출신인 金씨는 李씨의 따뜻한 정으로 타향살이의 고달픔도 달랠 수 있었다.

초임지에서 13개월만에 헤어지게된 이들은 손을 맞잡고 '사나이의 굳은 약속' 을 했다.

"어떠한 역경에도 굴하지 말고 성실하게 공직생활을 하자. 초임지인 군남면의 기관장이 돼 다시 만나 진정으로 주민들을 위하는 봉사행정을 펴자" 고 맹세했던 것. 이후 두 사람은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약속' 을 떠올리며 용기를 내 직분에 충실했다. 또 상을 받거나 집안의 경사가 생기면 같이 즐거워하는 동료애를 발휘했다.

공직기간 내내 관내 불우이웃돕기에 남모르게 헌신해온 李씨는 1983년 중학생 소년소녀가장 3명에게 3년간 학비를 지원해준 공로로 본지가 시상하는 '청백봉사상' 을 받기도 했다.

金씨는 주로 접적지역 대공업무를 맡았으며 1994년엔 대공정보업무 유공자로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두 사람은 기관장으로 다시 만난 후 1년여동안 자신들의 약속을 하나 둘 씩 실천해 나가고 있다.

이틀에 한번 꼴로 2시각 씩 金소장 차를 함께 타고 관내 마을 방범순찰 및 주민애로사항 청취에 나선다. 개인적으로 관내 순찰을 하는 것보다 경제적인데다 즉석에서 공동 대응책도 마련할 수 있기 때문.

지난 7일 오전 9시30분 쯤에는 갑자기 내린 눈으로 황지리 마래올고개 도로가 빙판길로 변하자 합동작전을 펴 1시간여만에 소통을 정상화시켰다.

주민신고로 현장에 달려간 金소장이 李면장에게 도움을 청했던 것. 이어 면과 파출소 직원 10명이 달려나와 제설작업을 벌였다.

지난해 1월엔 "삼거리 소재 마을복지회관 2층이 비행청소년들의 활동 공간으로 이용된다" 며 李면장이 金소장에게 지원을 청했다.

金소장은 즉시 현장으로 나가 3일간 이 곳에 머물던 남녀 중학생 13명을 적발한뒤 고민상담까지 해 이들을 부모들에게 인계했다. 이후 金소장은 거의 매일 이 곳 순찰을 돌고 있다.

이들은 새천년을 여는 지난 1일 면사무소 앞마당에 '爲民奉仕(위민봉사)' 라고 쓴 기념비석을 함께 설치하고 '진정한 봉사행정 실천' 을 다짐했다.

전익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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