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 대입 논술] 서울대 -이렇게 풀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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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서울대 논술고사의 논제는 출제자의 요구사항에 대한 정밀한 대응과 풍부한 지적 상상력이 필요한 것이었다.

루소의 '에밀' 에서 제시문을 주고 '도덕성을 갖춘 이성적 인간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를 물은 이번 논제의 핵심은 '인간의 자연적 본성' 과 '서구 문명적 획일성' 사이의 불일치를 파악하는 것이다.

본지의 '논술길잡이' (1998년 9월 10일자)를 통해서도 소개됐던 '에밀' 의 핵심은 바로 자연과 역사의 긴장관계다.

이 논제가 요구하는 것은 크게 두가지다.

우선 그 첫째는 '도덕성을 갖춘 이성적 인간이란 어떤 인간인가' 를 규정하는 것이다.

루소가 '에밀' 을 통해 제시하고자 하는 것은 '자연과 문명(혹은 이성의 역사)의 대결' 을 극복한 새로운 인간형이다.

루소는 인간 본성이 원래 선한데 사회생활(문명)을 경험하면서 인간 본성인 도덕이 말살되고 빈부와 계급 등 인위적이며 피상적인 하위문화가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내면의 자연적 본성과 사회 사이의 갈등을 야기하게 됐다는 것이다.

루소가 제시하는 '도덕성을 갖춘 이성적 인간' 은 이같은 갈등을 넘어 이기심이나 계산능력을 뜻하는 '이성' 보다 '느낌' '연민의 정' 에 바탕을 둔 공동체적 인간형을 의미한다.

이성적 문명이 가져온 폐해를 극복하고 내면의 본성에 바탕을 둔 인간형이다.

따라서 수험생들은 '합리적 동기에 의해 이치를 분별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가지면서 도덕성의 원천으로서 인간 본성에 의해 제한되고 내면화되는 인간형' 을 개념적으로 규정하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두번째로 이 논제가 요구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도덕 교육은 불가능한가' 라는 쟁점이다.

첫번째 요구사항인 '도덕성을 갖춘 이성적 인간' 에 대한 규정을 바탕으로 수험생이 스스로 논증을 하도록 요구하는 만큼 풍부한 지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먼저 도덕 교육이 가능하다는 입장에서 보자. 아이들에게도 이성적 판단능력이 있기 때문에 도덕교육을 시킬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 루소가 '에밀' 에서 강조하고 있는 인간관과 충돌하기 때문에 이를 설득력 있게 비판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또 아이들은 이성적 판단능력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반복적으로 도덕 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이때도 루소가 지적한 것처럼 도덕 교육이 오히려 인간의 본성적 도덕을 말살해온 '인위적 도덕' 이 아니라는 점을 해명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반면 도덕 교육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에서 보자. 도덕이란 원래 본성에 바탕을 두지 않고서는 교육될 수 없기 때문에 원래적으로 가지고 있는 내면의 도덕성을 발현하도록 도와줄 뿐 새로운 도덕률을 가르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때는 도덕률이 인간 내면의 자연적 본성 속에 들어 있다는 것을 해명할 필요가 있다.

도덕 교육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불필요한 것이라 주장할 수도 있다.

루소의 논지에 따라 인간은 원래 자연적 본성에 따라 도덕적으로 태어났고, 퇴락한 문명에 의해 교육된다는 것은 오히려 도덕성을 말살할 수도 있다는 요지의 주장을 전개하는 방안이다.

이때도 인간 역사를 통해 형성된 문명이 인간의 사회적 삶을 보존.보호하기 위해 불가피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에 대해 해명해야 한다.

어떤 경우든 '도덕성을 갖춘 이성적 인간' 을 규정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논지를 전개해야 한다.

어떤 논지를 택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논리적으로 설득력있게 논변을 개진하느냐가 평가의 관건이다.

김창호 학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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