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사계] 강도 득실…무서운 거리 베이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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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후난(湖南)성의 한 촌부인 루산후이(盧善輝). 그녀는 최근 임신 7개월의 몸으로 광둥(廣東)성 둥완(東莞)시 친척집 근처의 슈퍼에 들렀다 큰 변을 당했다.

직원들이 물건을 훔치지 않았느냐고 몰아세우더니 오른손 손가락 4개를 자른 것이다.

슈퍼는 그녀가 절도단 단원이라 주장했지만 그녀의 몸에선 훔쳤다는 물건이 발견되지 않았다. 중국 언론은 이같은 소식을 전하면서 슈퍼의 처사에 개탄을 금치 못했다.

중국 최대의 명절인 춘절(春節.설)이 2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이 때가 되면 중국 전역에서 좀도둑들이 극성을 부린다.

따라서 신경이 곤두선 슈퍼의 직원들이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른 것이다. 지난해 춘절 무렵에도 전국인민대표대회 부위원장 저우자화(鄒家華)의 동생이자 저명한 기상학자인 저우징멍(鄒競蒙)이 강도의 습격을 받고 숨졌다.

최근 베이징(北京)에선 밤길은 물론 낮길도 조심해야 한다는 인사를 주고 받는다. 주변의 모든 사람이 한번쯤은 털려본 경험이 있을 정도다.

외국인 회사에 근무하는 리샹메이(李香梅). 그녀는 최근 신문에서 도둑을 잡았다는 기사만 골라 읽는다. 최근 오토바이를 탄 2인조 들치기가 집 앞인 베이징의 딩푸좡(定福庄)1호 길에서 가방을 강탈해간 뒤에 새로 생긴 습관이다.

9일자 베이징청년보는 이 신문 산하 학통사(學通社)사장인 뤄신(駱新)이 한밤중 강도와 격투를 벌이다 다쳐 입원한 모습을 1면에 실었다.

그 위엔 펑타이(豊台)공안(경찰)분국의 허안강(賀安鋼)부국장이 공안들을 독려, 7일 하룻동안 17명의 좀도둑들을 붙잡았다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설을 앞두고 강도.도둑들과의 전쟁이 얼마나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강도나 도둑의 상당수는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다. 베이징의 외래 인구는 약 3백만명. 대부분은 합법적 신분이 없는 사람들로 한탕 뒤의 귀향을 꿈꾼다. 문제는 중국에 온 한국인들이다.

지난해 11월 중순 쿤룬(崑崙)호텔 부근의 한국인 가게가 털렸다.

사망자는 없었지만 중국어가 서툰 한국인 2명이 다쳤다. 칼과 총으로 무장한 강도가 들이닥쳐 '파샤' 를 외쳤다. 엎드리란 뜻이다.

중국동포 직원들은 재빨리 엎드렸지만 뜻밖의 상황에 당황한 데다 무슨 말인지 몰라 머뭇거리던 한국인 2명만 강도가 휘두른 흉기에 부상했다.

중국에 오는 사람들은 이제 '니하오(안녕하십니까)' '셰셰(謝謝.고맙습니다)' 뿐 아니라 '파샤' 나 '라오밍아(목숨만 살려주십시오)' 같은 말도 배워두는 게 어떨까 싶다.

유상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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