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낙선운동 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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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미국의 소설가이자 사회비평가인 업턴 싱클레어는 28세 때인 1906년 시카고 공장 노동자의 파업을 주제로 한 사회주의적 소설 '정글' 이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르면서 작가로서의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다.

그는 일평생 약 1백편의 소설과 사회평론을 발표했으나 정작 그 자신은 소설보다 노동자의 삶과 빈곤퇴치운동에 더 많은 관심을 쏟았다. 1934년 캘리포니아주 지사에 출마했던 것도 좀 더 효율적으로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서였다.

싱클레어의 출마는 기업인들을 불안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중산층조차 경제위축을 우려하게 했다. 대중적 인기와 빈곤층의 절대적 지지로 그의 당선은 손쉬워 보였다.

이때 나선 것이 선거운동 직전 설립된 미국 최초의 선거전문회사 '위테커&박스터' 였다. 부부간인 위태커와 박스터는 싱클레어를 낙선시키기 위해 상대방인 미리엄 후보를 적극 도왔다. 그들의 교묘한 선거전술로 싱클레어는 낙선했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그들 부부는 당시의 일을 이렇게 회상했다.

"우리는 미리엄이 훌륭한 주지사감이라 생각하지 않았으며,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싱클레어를 좋아했다. 하지만 싱클레어가 당선된다면 재난은 필연적이었고 그는 무모한 선거공약을 지킬 수도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의 지지자들은 그를 죽이려 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것을 막으려 했을 뿐이다" .

이 사례는 선거운동이 특정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특정 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해서도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특권층에만 투표권이 주어졌던 19세기 영국의 선거제도에서도 당락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친 것은 투표권이 없는 서민대중이었다.

이들은 투표권도 없으면서 후보연설이 개최될 때마다 떼지어 몰려가 자질과 역량이 모자라는 후보들에게 비난과 야유를 퍼부음으로써 이들을 낙선시키는 역할을 담당했던 것이다.

'문제' 있는 후보가 당선돼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유권자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유권자들은 마음에 드는 후보가 없으면 아예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게 상례처럼 돼 있다.

'낙선시키기 위한 투표' 는 결코 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대신 생겨난 것이 '낙선시키기 위한 운동' 이다.

현행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제87조가 그것을 위법으로 규정하고 있음에도 시민단체들이 출마 예정자 중 부정부패사건 관련자와 반개혁행위자, 또는 지역감정을 유발한 자 등의 명단을 공개키로 해 파문이 일고 있다. 좀 더 '합리적인 낙선운동' 을 강구해봄직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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