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시간 아이들 까투리 웃음에 선생님은 '썩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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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호 20면

바람둥이의 웃음소리는 어떨까. ‘걸걸걸(Girl Girl Girl)’이란다. 남자 바람둥이는 ‘허허허(her her her)’, 여자 바람둥이는 ‘히히히(he he he)’라고 웃기도 한단다. 또 살인마는 ‘킬킬킬(kill kill kill)’, 요리사는 ‘쿡쿡쿡(cook cook cook)’, 축구선수는 ‘킥킥킥(kick kick kick)’, 수사반장은 ‘후후후(who who who)’ 그리고 어린애들은 ‘키득키득키득(kid kid kid)’하고 웃는단다. 표음문자인 한글의 특성을 이용해 우리말과 영어를 절묘하게 결합한 유머다.

웃음의 표현

언어학자들은 한국어의 특성 중 하나로 의성어와 의태어가 풍부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웃음소리뿐 아니라 웃는 모습이나 방법을 표현한 단어도 순우리말과 한자어가 일상생활에서 매우 다양하게 쓰인다. 한국과 일본의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등장하는 웃음에 관한 단어의 수가 한국어는 100가지, 일본어가 34가지라는 분석도 있다. 그만큼 한국어엔 웃음을 표현하는 단어가 풍부하다는 것이다.

먼저 순우리말 표현으로는 눈웃음·코웃음처럼 얼굴 부위와 결합하거나, 여우웃음(교활하고 간사스러운 웃음)·소웃음(웃음 같지 않는 웃음, 소는 웃을 줄 모름)·염소웃음(염소처럼 채신없이 웃는 웃음)같이 각 동물의 특징을 담은 단어들이 있다. ‘눈웃음을 살살 치다’처럼 연상어와 함께 미묘한 감정에 그에 맞는 표정이 절로 그려지는 표현들이다.

잔웃음·함박웃음 등은 웃음의 크기를 보여주는 우리말들이다. 여기에 북한에서는 간살웃음(간사스럽게 몹시 아양을 떨면서 웃는 웃음)·데설웃음(시원치 않게 웃는 웃음)·까투리웃음(경망스럽게 키득거리며 웃는 웃음) 등의 표현도 사용된다고 한다.
‘소(笑)’와 결합한 한자 표현도 아직 널리 쓰인다.

미소(微笑: 소리를 내지 않고 빙긋이 웃는 웃음)·괴소(怪笑: 괴상한 소리로 웃는 웃음)·굉소(轟笑: 수레바퀴가 굴러가는 소리처럼 크게 웃는 웃음)·폭소(爆笑: 폭발하듯 갑자기 웃는 웃음)·홍소(洪笑: 크게 입을 벌리고 떠들썩하게 웃는 웃음)·가가대소(呵呵大笑: 대단히 우스워서 큰 소리를 치면서 깔깔 웃음) 등은 웃음소리와 관련된 단어들이다. 또 웃는 얼굴을 기준으로 함소(含笑: 웃음을 머금고 조용히 웃는 모습)·빈소(嚬笑: 찡그리고 웃는 모습)·교소(嬌笑: 요염한 얼굴로 웃는 웃음)·파안대소(破顔大笑: 얼굴이 활짝 펴지면서 크게 웃는 웃음) 등이 있다. 포복절도(抱腹絶倒: 배를 움켜 쥐고 숨이 끊어질 정도로 웃는 웃음)·요절복통(腰折腹痛: 배가 아프고 허리가 끊어질 정도로 웃는 웃음) 등은 그야말로 온몸으로 웃는 모습을 표현한다.

웃을 일이 어디 기분 좋을 때뿐일까. 비웃음도 있고 쓴웃음도 있다. 한자어로 도소(滔笑)·조소(嘲笑)·비소(鼻笑)·암소(暗笑) 등이 그런 때 쓰는 표현들이다. 또 인간관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웃는 미고소(微苦笑)·습소(濕笑)도 있고 기가 막힐 때는 실소(失笑: 알지 못하는 사이에 툭 터져 나오거나 참아야 하는 자리에서 나오는 웃음)나 앙천대소(仰天大笑: 고개를 젖히고 하늘을 우러르며 웃는 웃음, 어이가 없어하는 웃음)를 금치 못할 수도 있다. 시니컬하면서도 재기발랄한 요즘 젊은 층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신조어 ‘썩소(썩은 웃음의 준말, 입 한쪽 꼬리만 올라간 모습)’도 언젠가 국어사전에 오를지 모를 일이다.

사실 전 국민의 영어 공부 열풍에도 불구하고 웃음과 관련된 영어 표현은 laugh와 smile밖에 떠올리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이 기회에 깔깔거리거나 킬킬대며 크게 웃는 것을 말하는 chuckle이나 giggle, 이를 드러내고 웃을 때 쓰는 grin, 소리 죽여 웃는 모습인 titter, 실없이 크게 웃는 guffaw 등의 단어도 알아두면 어떨까.

기분 좋은 웃음은 이왕이면 많이 웃을수록 좋다는 게 만고의 진리다. ‘웃으면 복이 온다’ ‘한 번 웃으면 한 번 젊어진다’를 비롯해 ‘죽 사발이 웃음이요, 밥 사발이 눈물이라(먹을 것이 있어도 근심과 걱정 속에 지내는 것보다 가난하게 살더라도 걱정 없이 사는 편이 낫다)’ ‘한 잔 술에 눈물 나고 반 잔 술에 웃음 난다(사람을 사귈 때 서로 대하는 태도나 방법에 따라 서운해지기도 하고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 등은 그런 진리를 담은 속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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