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암 걸린 아내 외도하는 남편, 그들에게 사랑은 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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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사랑이 떠나가면
레이 클룬 지음
공경희 옮김, 그책
405쪽, 1만3000원

“당신이 내가 없는 데서만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아니 마음이 아파. 요즘 내가 같이 살기에 좋은 상대가 아니라는 걸 나도 알아. 난 가슴이 하나뿐인 암에 걸린 여자고, 아마도 몇 년밖에 못 살 거야. 그 몇 년 동안 여전히 날 사랑하는 지 아닌지 모르는 남자랑 사느니 차라리 혼자 살고 싶어. 우리 이혼해야 할까 봐, 댄”

유방암에 걸려 투병 중인 아내 카르멘이 남편 댄에게 말한다. 한쪽 가슴을 잃고, 항암치료로 성욕마저 잃은 아내를 ‘밝힘증’ 환자인 남편이 견디지 못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죽어가는 아내를 바라보는 게 버거운 남편은 출근할 때마다, 그와 불륜 관계인 로즈를 만나며 행복해했고 도망가고 싶어했다. 하지만 그는 대답한다. “안 돼, 이혼하고 싶지 않아. 당신을 떨쳐내고 싶지 않아.” 그리고 스스로 멍해진다. 그것은 마음 깊숙한 곳에서 나온 진심이었으므로.

카르멘과 댄은 암스테르담에서 각자 광고회사를 운영하며 여유 있고 평온한 삶을 누리던 행복한 부부였다. ‘고독공포증’에 시달리는 댄이 카르멘의 묘사처럼 “암스테르담과 브레다 여자의 절반이랑 자고 다니는” 문제만 제쳐 둔다면. 하지만 카르멘이 유방암에 걸리면서 모든 게 달라진다. 그럼에도 댄은 여전히 외도를 하고, 카르멘은 “용서도 사랑의 일부분”이라며 그를 봐준다.

남편으로서의 의무와 몸이 이끄는 욕정 사이에 흔들리던 댄은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신 내린 점쟁이’를 찾아가 해답을 얻는다. “오랜 세월에 걸쳐 부인에게 받은 것을 보답할 기회”라는 말처럼 댄은 카르멘과의 남은 시간을 즐긴다. 대화를 나누면서, 곁을 지키면서 안락사를 선택한 카르멘과 함께 죽음을 준비한다.

책은 순애보가 아니다. 오히려 아픈 아내를 두고도 외도에 빠져드는 댄에 화가 치밀 정도다. 하지만 책은 죽음을 마주한 사랑하는 사람들이, 부부가 그리고 가족이 어떻게 상처 주고 죄책감에 시달리는지, 그 속에서 어떤 사랑과 욕망의 감정이 얽히고 설키는지 가감 없이 보여준다. 때문에 이 ‘징한 사랑의 노래’는 사랑의 본질에 대한 고민을 던진다. 부언하자면, 가능한 공공 장소에서 책의 마지막 부분은 펼치지 말기를. 세 살배기 딸과 카르멘의 이별 장면 등에서 눈물을 쏟는 민망한 장면이 연출될 수 있으니.  

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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