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기쁨] 경기도 과천시 부림동 김남정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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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지난해 12월 26일 일요일 오후 3시. 부평 성모자애병원 251호실은 바깥의 들뜬 연말 분위기에도 아랑곳없이 수업열기로 뜨거웠다.

강좌는 중앙대 교육학과 박사과정 전공과목 중 하나인 '교육고전학의 이해' . 담당교수는 손인수 교수(65)였다.

스승은 병중이었다.

학기초부터 스승을 줄곧 괴롭혀온 위장병은 중간고사 무렵부터 악화돼 갔다.

제대로 식사를 못해 링거액으로 육체를 보존하면서도 스승은 10월부터는 아예 학생들을 집으로 불러 수업을 했다.

그러다 결국 12월 스승은 입원하셨다.

병실에서의 수업은 그동안 한두번 휴강됐던 수업을 보강하고 사제간의 마지막 정리를 해야한다면서 스승이 우겨 이루어진 종강수업이었다.

다른 과목은 3~4주전에 끝났지만, 스승은 "병마에 굴복해 흐지부지 끝낼 수는 없다" 면서 환자복으로 제자들을 맞으셨다.

야위고 수척한 모습이었지만 쉽사리 스러지지 않겠다는 스승의 권위와 위엄은 제자 모두를 숙연케 했다.

나는 스승의 가장 나이 많은 제자였다.

삼십여년의 교직생활 끝에 배움에 대한 열망 하나로 오십대 중반의 나이에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스승은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특별히 이삼십대 사이에 끼여있는 오십대 제자에게 다가와 손을 잡고, 이런 자세가 진실로 필요하다며 격려하셨다.

나는 그에게 진정으로 감화를 받았고 고단한 학업을 이겨낼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스승이 평소에 강조한 것은 사제간의 의리와 정, 스승의 도리를 중시하는 교육철학이었다.

사도문화와 선비정신을 제일 중시한 스승은 "교육은 결국 인격과 인격의 만남" 이라고 강조했다.

평범한 스승은 말하고, 좋은 스승은 모범을 보이며, 위대한 스승은 감화를 준다는 말이 있다.

꼿꼿하고 전형적인 선비이며, 제자들에게는 엄격하면서도 자상한 스승을 50이 넘어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은 그야말로 축복스런 '삶의 기쁨' 이었다.

경기도 과천시 부림동 김남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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