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특검 뒤집고 되뒤집고…'옷로비'진실 헷갈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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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옷 로비 사건과 관련, 대검이 최병모(崔炳模)특검의 수사 결과를 정면으로 뒤집은데 이어 서울지법이 대검의 수사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국민 사이에 수사기관의 공신력에 대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특검의 수사 결과를 검찰이 다시 뒤집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며 "도대체 사건의 진실이 무엇이냐" 며 헷갈려 했다.

사건의 진실 규명을 끈질기게 요구해왔던 시민단체들은 "특별검사의 모호한 권한과 위상이 이같은 혼란을 불러왔다" 고 지적하고 있다.

특검은 지난 20일 김태정(金泰政)전 검찰총장의 부인 연정희(延貞姬)씨와 라스포사 정일순(鄭日順)사장이 이번 사건의 주역이었다고 발표했었다.

그러나 대검 중수부는 정확히 8일 뒤인 28일 정반대로 강인덕(康仁德)전 통일부장관 부인 배정숙(裵貞淑)씨와 최순영(崔淳永)신동아그룹 회장 부인 이형자(李馨子)씨가 사건을 주도했다고 결론내렸다.

이에 서울지법 김동국(金東國)판사는 29일 대검이 청구한 裵씨에 대한 영장을 기각하면서 "이형자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 고 밝혔다.

파업유도 사건도 마찬가지다.

검찰은 진형구(秦炯九)전 대검 공안부장이 파업유도를 주도했다고 밝혔으며, 강원일(姜元一)특검팀은 반대로 강희복(姜熙復)전 조폐공사 사장이 주역이었다고 발표했었다.

국가 기관들끼리 서로 모순되는 결론을 내려 공권력의 공정성.신뢰성이 무너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무엇보다 특검법의 한계 때문이었다는 지적이 많다.

정치권, 특히 여권이 여론 무마용으로 특검제를 졸속 도입해 특검제를 유명무실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서울변협 하창우(河昌佑)총무이사는 "위증의 경우 사건 실체와도 직결되는데 수사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제외됐다" 며 "특검팀에 실질 권한을 부여하지 못한 게 문제였다" 고 꼬집었다.

'함께하는 시민행동' 하승창(河勝彰)사무처장도 "특검이 최종 기소까지 책임을 지지 않고 검찰에 넘긴 것이 수사 결과의 번복을 불러왔다" 고 분석했다.

반면 특검측의 무책임을 비난하는 지적도 있다.

판사 출신 중견 변호사는 "옷 로비나 파업유도 특검팀이 수사 결과에 대한 기소를 검찰에 맡기는 등 책임을 회피한 듯한 느낌을 줬다" 고 말했다.

김주덕(金周德)변호사는 "두 사건 모두 엇갈리는 진술에 대해 판단을 내려야 하는데 여기저기서 수사를 하면서 사건 관련자들이 진술을 번복하고 말을 맞춰 더 힘들어졌다" 고 지적했다.

그는 또 "특검과 검찰 모두가 특정 의도와 목적을 갖고 수사하지 않았는지 의문" 이라고 밝혔다.

서울대 임현진(林玄鎭.사회학).한인섭(韓寅燮.법대)교수는 "정의에 대한 신뢰가 상실됐다.

법적용 기관마저 옳고 그름을 가리지 못하는 마당이니 국민의 가치관 혼란은 더욱 커질 것" 이라며 "공권력이 신뢰성을 회복하려면 상당한 시간과 고통이 뒤따를 것" 이라고 우려했다.

채병건.최재희.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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