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서 드러나는 미군 6.25 양민학살] 경남 사천 조장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미군기의 사격이 끝난 후 하천 둔치에는 중상을 입고 목이 말라 하천물을 먹으려다 죽어간 팔.다리가 잘린 시신들이 즐비했죠. "

50년 8월 2일 오후 1시쯤 경남 사천시 곤명면 조장리 마을앞 하천 둔치에서 미군기 4대의 '무차별' 사격을 받았으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강두식(姜斗植.61)씨. 그는 그때를 생각하며 치를 떨었다.

당시 97명이 숨지고 26명이 중상을 입었다.

초등학교 6학년(12세)이었던 姜씨는 부모 등 일가족 8명과 함께 마을앞 하천 둔치에 모여있다 기관총 세례를 받았다.

姜씨 등 마을 주민 4백여명은 사천이 북한군 점령지역인 까닭에 양민임을 알리기 위해 흰옷을 입고 미군 정찰기에서 잘 보이는 곳에서 나흘째 집단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는 "미군기에서 잘 보이도록 장대 끝에 하얀 천을 매달아 놓고 밥을 해먹거나 자갈밭에 멍석을 깔고 자는 등 양민임을 적극적으로 알렸다" 고 말했다.

이날 미군기의 기총소사는 1시간쯤 계속됐고 사격이 끝났을 때는 하천물이 피빛으로 물들어 있었다고 조장리사건 대책위 차수태(車壽泰.67)위원장은 밝혔다.

車씨는 "사격직전 미군 정찰기가 낮게 비행하면서 둔치에 모여있던 우리의 신분을 확인했는데도 총알을 퍼부은 것은 명백한 과잉대응" 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車씨는 "하천변에는 중상을 입은 사람들의 '살려달라' 는 고함과 신음소리가 며칠동안 계속됐다" 고 당시를 회상했다.

87년 12월 발행된 곤명면지에도 조장리를 '6.25때 흰옷을 입고 피난하던 중 폭격당해 1백여명의 사상자를 낸 마을' 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사천〓김상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