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데이트] 최나연 “화장실서 나보고 남자라며 도망간 애도 있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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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마를 입으면 허전한 느낌이 들어 셋업이 안 돼요. 뭔가 이상해요. 상체에 비해 다리가 굵고 예쁘지도 않거든요.” 지난 1일 끝난 LPGA투어 하나은행-코오롱챔피언십 마지막 날 짜릿한 1타 차 역전승으로 시즌 2승을 거둔 최나연(22·SK텔레콤·사진). ‘얼짱 골퍼’의 원조 격인 그에게 왜 치마를 입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다. 1m68cm의 훤칠한 키에 마른 체형인 그가 “두껍다”면 다른 선배 언니들은 어쩌란 말인가. 그는 “지난해 렉서스컵 아시아팀 멤버로 출전했을 때 단체 복장으로 치마를 입어야 했지만 혼자서만 반바지를 입었거든요. 그런데도 모두가 내 다리만 쳐다보는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려서 샷을 할 수가 없었어요”라고 토로했다.

6일부터 일본에서 열리는 미즈노 클래식 출전을 위해 출국하던 날인 2일 최나연과 인터뷰를 했다.

최나연에게는 남자 같은 보이시한 매력이 있다. 그도 인정했다. “힙합 패션을 즐기는 톡 튀는 여자죠. 중성적 이미지가 좋아요.” 그래서일까. 집에는 힙합 가수들이 즐겨 쓰는 뉴에라 모자가 50개가 넘고 100켤레가 넘는 운동화가 신발장을 가득 채우고 있다. 대신 치마와 하이힐은 없다.

이런 성격과 외모 때문에 여자 화장실과 목욕탕에서 쫓겨난 적도 여러번 있다고 했다. “미쳤어. 남자애가 왜 여자 화장실로 들어오는 거야.” 학창 시절 화장실에서 자주 들었던 얘기다. 한번은 화장실에서 나오다 한 여학생과 마주쳤는데 그 여학생이 놀라서 반대편 남자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그 여학생은 1초도 안 돼 “악!” 하고 뛰쳐 나왔는데 지금도 그걸 생각하면 웃음이 난단다.

하지만 최나연은 ‘천생 여자’다. 미니어처 향수를 수집하는 게 취미인 그는 불가리의 ‘베이비 파우더 향’을 가장 좋아한다. 외모는 보이시하지만 마음은 날개를 쉼 없이 파닥이는 새처럼 여리다. 별명도 ‘새가슴’이었다. 그러다 지난 9월 삼성월드챔피언십에서 생애 첫 승을 하면서 확 달라졌다.

“이제 치마 안 입는 것만 빼고는 다 바뀌었어요. 생각하는 것부터 스윙까지 다요. 스스로를 믿게 되고 두려움이 없어졌어요.” 그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삼성월드챔피언십 마지막 날 6번 홀까지 7타 차 선두였어요. 만약 그대로 우승을 했더라면 ‘새가슴의 두려움’을 떨쳐내지 못했을 거예요. 1타 차까지 좁혀지자 손과 다리가 덜덜 떨려서 퍼팅을 할 수가 없었죠. 그런데 그 상황을 스스로 뚫고 나왔다는 거죠.”

그랬다. ‘새가슴’은 그 우승 이후 ‘긍정의 힘’으로 무장해 돌아왔다. 경기를 치르면서 한 번도 우승에 대한 확신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는 그는 하나은행-코오롱챔피언십에서는 달랐다. 또 우승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대회 사흘 전 LPGA투어 선수들을 위한 바비큐 파티가 열렸다. 파티장 한 켠에는 지난해 챔피언 캔디 쿵(대만)이 타고 입장할 ‘꽃차’가 준비돼 있었다. 그런데 쿵이 불참하면서 그 꽃차는 주인 없는 신세였다. 그때 최나연이 어머니에게 “나 저 꽃차 타고 싶어. 내년에는 내가 저 꽃차를 타고 입장할 거야. 지금 탈 테니 사진 찍어줘”라고 말했다. 어머니 송정미(43)씨는 “남들 앞에 잘 나서지 못하는 성격의 애가 참 많이 바뀌었구나 생각했죠”라고 말했다. 최나연은 결국 우승해 꽃차를 탔다.

또 뭐가 달라졌을까. “지난주 18번 홀의 상황이 대표적이죠. 첫 우승 도전이었다면 삼성월드 때처럼 웨지 대신 퍼터를 잡았겠지요(최나연은 핀에서 12야드 거리에서 웨지샷으로 공을 홀 한 뼘 앞에 붙여 버디를 낚아 1타 차로 우승했다). 그런데 전혀 떨리지 않았어요. ‘내가 아니면 누가 우승하겠어’ 그런 생각으로 58도 웨지를 잡았죠. 지금은 퍼팅도 3m든 5m든 그냥 들어갈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첫 승 다음 날 아침에는 서러운 감정이 복받쳐 호텔 방에서 하염없이 울었는데 이번에는 실웃음이 배어났어요”라는 최나연. “앞으로 ‘최나연식 골프’가 더 재미있을 거예요”라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최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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