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군, 체첸 공세 주춤…94년 1차전 재연 가능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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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그로즈니 APㆍAFP〓연합, 김정수 기자]러시아 연방군이 체첸의 수도 그로즈니 진격 사흘째인 27일에도 도심을 장악하지 못한 채 전전긍긍하고 있다.

죽음을 무릅쓴 반군들의 저항이 워낙 거센 데다 곳곳이 지뢰밭이어서 좀처럼 공격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94~96년 러시아-체첸전쟁의 재판이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3개월 가까이 도시 외곽에서만 공격을 퍼붓던 러시아군이 그로즈니에 전격 진입한 것은 성탄절인 지난 25일 새벽. 이미 육군과 공군 정찰을 통해 파악한 반군들의 거점지역에 대해 대대적 폭격을 가한 뒤였다.

비슬란 간타미로프 전 그로즈니 시장이 이끄는 8백여명의 친(親)러시아계 체첸민병대가 선봉에 섰다.

이들은 시내 곳곳에 있는 지뢰들을 제거하며 연방군의 진입로를 텄다.

러시아군은 또 지난 체첸전의 경험을 교훈삼아 대규모 진격 대신 기동성을 앞세운 소규모 병력을 거미집처럼 여러 갈래로 투입, 병력희생을 최소화하는 작전을 택했다.

시내 중심의 혁명로(路)에 위치한 체첸 대통령 관저에 러시아 깃발이 내걸리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였다.

그러나 반군들은 만만치 않았다.

1천5백여명의 체첸군은 20~30명씩 소부대를 구성, 도심과 시외곽 등지에서 장갑차를 앞세운 러시아군에 박격포와 대포를 쏘아댔다.

또 시내 곳곳에 참호를 구축하고 저항하다 인근 야산으로 퇴각하는 전술을 구사했다.

도심 입성에 성공한 친러시아계 체첸민병대원들도 지하통로와 터널에 잠복해 있는 반군들의 거센 공격을 받아 적잖은 인명피해를 보았다.

이에 따라 러시아군은 27일 그로즈니 외곽지역에 포진해 있는 전체 병력 10만여명 가운데 2천여명만을 도심 진격에 동원했다.

대신 그루지야로부터 그로즈니로 반군 보급품이 반입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남부 산악지대의 도로 봉쇄작전에 공격의 초점을 맞췄다.

특히 러시아 공군기들은 남부 산악지대의 반군 지하거점과 동굴, 요새를 격파하기 위해 이날 처음으로 강력한 폭발력을 지닌 소이탄을 투하하기 시작했다.

간타미로프는 "늦어도 연내에 그로즈니를 러시아군의 손 안에 넣겠다" 며 장담하고 있다.

올해 체첸 작전 개시 후 러시아군의 희생자도 총 3백97명으로 제1차 체첸전에 비하면 훨씬 적다는 것이다.

다른 러시아군 관계자들 역시 "그로즈니 방어체제가 완벽해 애를 먹고 있긴 하지만 2~3주 안에는 도심장악이 가능할 것" 이라고 말하고 있다.

체첸측도 전쟁에 지친 국민을 이끌고 언제까지 그로즈니 사수(死守)전략을 밀고나가야 할지 고민이다.

일부 사령관은 일단 그로즈니를 포기하고 남부 산악지대에서 게릴라전을 펼치며 대세의 반전을 노리자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아슬란 마스하도프 체첸 대통령은 최소한 2~3주 정도는 더 그로즈니를 지키도록 강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난 1차전으로 미뤄볼 때 그로즈니 포기가 이들의 완전한 항복을 의미한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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