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신당 민주화는 헛구도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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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국민회의가 추진해온 신당은 역시 총선용에 불과한 것인가.

지난 8월 30일 국민회의 총재인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당 중앙위에서 신당 창당을 공식선언했다.

신당이 총선 승리만을 위한 게 아니라 21세기의 역사적 의미를 담은 신당으로서 거듭날 것을 강조하고 '총선 공천을 당지도부가 좌지우지하는 시대는 끝낼 것' 임을 공언했다.

또 신당의 이재정(李在禎)총무위원장도 '사람 몇명 갈아치우기보다는 당운영 시스템을 민주적으로 변화시키는 게 의미' 라며 신당의 민주화를 거들었다.

여기에 당시 중앙위는 'DJ당' 의 한계를 못벗어날 것이라는 일반의 의구심을 털어내려는 듯 동교동계가 눈에 안띄도록 배려하는 노력을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정식 창당을 20여일 앞둔 '새천년 민주신당' (가칭)의 모습은 과연 어떠한가.

보도에 따르면 金대통령은 지난 24일 신당지도부를 불러 신당 지도체제 창당방식을 비롯한 세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지침을 내렸다고 한다.

창당에 노하우가 많고 창당을 주도한 金대통령인 만큼 신당지도부에 대한 '훈수' 를 한다고 우리가 뭐라 시비할 계제는 아니다.

안정론을 확산시키고, 오전에 국민회의 합당선언을 한 뒤 오후에 신당에 합류하건 말건 그쪽 사정의 일이다.

하지만 신당이 집권 국민회의까지 흡수해 태어나는 '새 여당' 이라는 점에서 그 공적인 측면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

무엇보다 신당의 민주성 문제다.

金대통령은 내년 1월 20일 창당대회때 경선 없이 임시지도체제를 구성해 총선을 치르고 5개월쯤 지난 9월께나 전당대회를 열어 당직 경선을 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렇다면 공천 물갈이니, 영입이네 하며 몇달간 정치판에서 벌어진 소음과 혼란만 겪어온 일반 국민들이 신당에서 얻는 것은 무엇인가.

창당의 시시콜콜한 대목까지 청와대가 기획 연출을 하고 뒷전에 빠져 있겠다던 동교동계가 신당의 조직 인사까지 총괄했으니 결국 국민들은 간판만 바꿔단 또 하나의 'DJ당' 만을 대할지 모른다.

신당에 대한 유권자의 기대는 金대통령이 그렇게 추구하던 전국정당화를 통한 총선 승리와 직결될 것이다.

그러나 여권은 옷 로비 의혹에다 서경원 전 의원의 '통일운동' 시비, 국민회의 국창근 의원의 '싸가지' 소동 등으로 지지도가 여의치 않은데다 마지막으로 고대했던 자민련과의 합당도 물건너 간 상황이다.

게다가 당선을 의식한 인선으로 정체성도 흐려지고 있다.

이런 마당에 신당이 DJ색깔 탈색에 실패한다면 우리 정치의 퇴행만을 낳게 한 또 하나의 지역당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대로라면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개혁적 국민정당' 은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새천년 민주신당' 에서 최소한의 '민주' 흔적도 구경 못한다면 누가 새 천년을 이끌 정당이라고 기대하고 밀어주겠는가.

유권자의 지지를 획득할 수 있는 말대로의 신당이 되자면 거창한 구호나 공약보다 일단 약속한 일을 실천함으로써 새 천년의 비전과 신뢰를 확보하는 데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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