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키워드] 23. 24시간 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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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4시간 영업을 합니다' .

언제부터인가 밤이 환해졌다.

가로등 불빛 때문만은 아니다.

PC방.휴게방.찜질방을 비롯해 밤을 밝히는 공간이 많아진 것이다.

전에는 홍등가에 국한된 현상이었는데 이제는 도심 유흥가는 물론이고 일반 주택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24시간 편의점' 이 출현한 이후 우리의 생활 스타일은 완연히 달라지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주고받는 휴대폰이 예증하듯 시공간이 압축되고 있으며, 이는 다시 개인의 생체리듬에도 변화를 주고 있다.

전통적으로 밤은 휴식의 시공간인데 그게 무너지는 것이다.

단적으로 하루 24시간이 대낮과도 같은 사회라는 것인데, 이게 전지구적 현상이라는 주장이 나와 주목된다.

문제의 주장은 레온 크라이츠만의 '24시간 사회(The 24 Hour Society.1999년)에서 체계화되고 있다.

국제관계 전문가인 저자는 오늘의 사회가 직면한 주요 변동이 '24시간 현상' 이며, 이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앞으로 사회적 의제로 부각되리라고 한다.

갈수록 낮.밤, 주말.주중의 경계가 사라지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시간 사용법' 을 다시 배우고, 나아가 '시간 절약을 위해 돈을 쓰느냐' '돈 절약을 위해 시간을 쓰느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그러면 왜 '24시간 사회' 인가.

통신기술의 급속한 발전에 힘입어 전세계가 하나의 그물망으로 얽히고 있다.

'지금.여기' 와 '내일.저기' 가 동일평면에 수렴되는데, 이는 전지구적 경제교류와 인구이동으로 인해 가속되고 있다.

국제관계의 유연성 증대는 개별 사회의 틀과 관행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며 특히 도시의 삶은 24시간 현상에 맞춰 재편되고 있다는 것이다.

24시간 사회 개념의 핵심은 '밤의 식민화' 에 있다.

밤은 마치 서부 개척시대의 변경(邊境)과도 같다.

누가 밤을 차지하느냐가 관건이다.

21세기에는 시간이 희소(稀少)자원이며, 밤시간은 자원과 이윤 창출의 새 공급처로 탈바꿈하게 된다.

그렇다고 시간이 새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하루 가용시간을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좀더 신축적이고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문제는 그 신축성과 효율성이 정녕 누구를 위한 것이냐 하는 점이다.

24시간 사회는 종래와 마찬가지로 전체 사회의 노동시간 및 노동강도만 높이는 결과를 초래하기 십상이며, 그로 인해 이득을 보는 세력은 자명할 것이기 때문이다.

잠 연구의 권위자 스탠리 코렌은 '잠도둑들' (1996년)에서 잠 부족이 오늘날 사회문제의 숨은 원인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인간의 생체리듬이 최적상태를 유지하려면 밤에 최소한 9~10시간 수면해야 하는데, 그 시간이 줄어들고 있음을 경고한다.

일상의 부주의한 실수나 교통사고에서 체르노빌 원전(原電)사고에 이르는 재해와 재난에는 현대인의 잠 부족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24시간 사회가 마주한 뜻밖의 복병은 바로 잠 문제다.

수면시간이란 게 과연 얼마만큼 신축적일 수 있느냐 하는 문제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24시간 현상이 일상생활 전반으로 확산되면 될수록 수면시간의 양과 질 문제를 둘러싸고 새로운 차원의 갈등과 분쟁이 조성될 것이다.

"밤새우지 말란 말이야!" 라는 아우성이 곳곳에서 울려퍼지면서 말이다.

김성기 (현대사상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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