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군대 갈 권리, 안 갈 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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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70년대 유신기에는 사관학교 출신 현역장교만을 대상으로 3급공무원을 대거 선발, 임용한 일이 있다.

행정에 적합한 고도의 훈련을 받은 인력을 활용한다는 명분이었지만, 군부의 지지를 필요로 하던 독재자의 군부회유책이란 의심을 모은 일이었다.

군부 우대가 절정에 오른 것은 5공시대였다.

육사 교수로 오래 있다가 이 무렵 예편해 영남대에 취임한 이병주 교수는 모든 처우를 종합해 볼 때 육사쪽이 더 나았다고 놀라움을 표했다.

사병 복무자 경력 인정이 일반화된 것도 이 시절의 일이다.

군복무자 입장에서는 취업에서 경력을 인정받고 선발시험에도 가산점을 받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군대에서 '박박 기는' 동안 같은 나이의 여성이나 면제자가 경력을 쌓아 먼저 승진해 버리면 영원한 낙오자가 되란 말인가.

또 군대에서 머리가 굳어진 만큼 다만 얼마만큼이라도 시험에서 배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경력 인정에 대해서는 별 군말이 없다.

복무한 만큼 국가사회에 공헌한 것이고, 조직생활의 경험은 직장활동에도 대개 유용한 밑천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발시험 가산점은 다르다.

복무경험이 참으로 근무에 보탬이 되는 것이라면 그 가치가 시험성적에 나타나야 한다.

시험 내용을 복무경험자에게 조금 유리하게 내는 것은 직장성격에 따라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똑같은 시험을 보고 그 성적에 가산점을 붙인다는 것은 '군대 못간' 사람들에게 불리한 차별이다.

경쟁이 치열할수록 가산점의 위력이 커지니 무시할 수 없는 측면이다.

헌법재판소의 가산점 위헌판결이 복무 중인 장병들에겐 불만스러울 것이다.

평등을 강조하는 미국 공무원 임용시험에도 가산점이 있음을 지적하기도 한다.

그러나 미국에도 왕년의 우대정책이 경과조치로 남아 있을 뿐,가산점은 사라져가고 있다.

우리 국민에겐 '군대 갈 권리' 도 '군대 안갈 권리' 도 없다.

여군이 있지만 문호가 좁으니 여성에겐 병역의 기회가 거의 없는 셈이고, 남성도 신체조건이 맞아야 군대에 갈 수 있다.

한편 군대 가는 사람 중에는 가고싶어 가는 사람이 거의 없다.

군대 가고 안가고 때문에 차별을 둔다면 어느 한쪽은 억울할 수밖에 없다.

십여년 전까지 젊은이들이 술자리에 둘러앉으면 군대 얘기에 빠지는 일이 많았다.

유경험자가 절반만 돼도 화제를 군대 밖으로 끌어내 오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은 다르다.

왜 그럴까.

"여자들이 싫어하잖아요? 그리고 다른 재미있는 얘기가 많잖아요. " 한 젊은이의 대답이다.

그렇다.

우리 사회는 많이 변했다.

여성을 존중하는 쪽으로, 그리고 재미있는 쪽으로. 그에 비해 군대는 별로 변하지 않았다.

국가를 위해 복무하는 장병들이 군대생활 자체에서 보람을 찾을 수 있는 쪽으로 군대가 바뀌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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