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주목되는 정치권의 국군포로 송환 요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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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중국을 방문 중인 한나라당 대표단이 중국에 억류 중인 국군포로 정모(81)씨의 조속한 송환을 어제 중국 공산당 지도부에 요청했다고 한다. 정씨는 8월 두만강을 건너 북한을 탈출했으나 중국 공안에게 붙잡혀 3개월째 옌볜의 한 병원에 구금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씨는 건강이 극도로 악화된 상태라고 한다. 외교채널을 통한 정부의 송환 노력에 성과가 없자 정치권이 나선 셈이다. 당이 정부보다 우위에 있는 중국의 특수한 정치 구조를 감안할 때 의미 있는 시도라고 본다.

20대 초반의 나이에 전쟁포로가 된 정씨는 팔순을 넘긴 나이에 또다시 포로 아닌 포로 신세가 돼 언제 북송될지 모르는 처지에 있다. 정씨의 송환은 국가가 나서서 반드시 성사시켜야 할 과제다. 정씨에게 참전을 요구한 국가가 무사히 본국으로 송환시킬 책임도 져야 마땅한 것이다. 정부는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우리가 보기엔 미덥지 못하다. 탈북한 국군포로나 그 가족이 현지 공관의 미온적 대처 탓에 중국 공안에 체포돼 강제 북송된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의 협조와 이해 없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중국은 북한과의 관계 때문에 탈북자를 ‘불법 월경(越境)’ 문제로 다루고 있다. 그러나 본질은 인도주의적 문제다. 애써 이를 외면하고 툭하면 탈북자를 잡아들여 북한에 넘기는 중국은 국제사회로부터 비난받아 마땅하다. 우리 정부 또한 국제법상 인도주의 원칙에 입각해 당당하게 대응해야 함에도 중국 핑계만 대며 속수무책으로 있는 것은 부끄럽고 무책임한 노릇이다. 적어도 국군포로나 납북자 출신 탈북자 문제만큼은 정부가 책임지고 해결한다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북한에는 아직 560명의 국군포로와 494명의 납북자가 생존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들의 조속한 귀환은 국가의 존재 이유와 직결된 문제다. 이 점에서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어제 국회 대표연설에서 ‘한국판 프라이카우프(Freikauf)’를 제안한 것은 눈길을 끈다. 통일 전 서독 정부는 1963년부터 89년까지 ‘자유를 산다’는 뜻의 ‘프라이카우프’ 프로그램을 통해 34억4000만 마르크 상당의 현금 또는 현물을 주고, 3만3755명의 동독 정치범을 서독으로 데려왔다. 안 대표의 제안은 돈을 주고서라도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내용이다.

정부 대신 민간을 앞세우고, 현금보다 현물 지원에 중점을 뒀던 옛 서독의 사례를 잘 참고해 인도주의적 상호주의 차원에서 국군포로·납북자 문제 해결과 대북 식량 및 비료 지원을 연계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진작 이런 방식을 택했더라면 퍼주기 논란에 따른 남남갈등을 피하면서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 제안이 구체화되길 기대하며 우선 중국에 억류 중인 정씨부터 기필코 남쪽 송환이 이뤄지도록 정부와 정치권이 총력을 기울이길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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