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신라 영재 '우적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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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제 마음에

모습 모르려하던 날

멀리 지나치고

이제엘랑 숨어가고 있어라

오직 그른 파계주

두려워할 모양에

또 돌아가랴

이 칼을 지나면

좋은 날 새이리니

아으 오직 요만한 선으로

정토 못 맞을까 하니이다

- 신라 영재(永才.?~?) '우적가(遇賊歌)'

영재는 승속에 얽매이지 않고 익살맞았다.

그 역시 이름난 향가시인이자 수행자였다.

남악으로 공부하러 가는데 대 고갯길에서 산적 60여명을 만났다.

그들이 그를 죽이려 했다.

칼날 앞에서도 껄껄 웃었다.

그들은 그가 영재 스님인 것을 알고 노래 하나 지어부르면 살려주겠다 한다.

노래를 불렀다.

비단을 주기에 사절했다.

세상 욕심이 지옥으로 가는 근본이니 나는 지금 산중으로 가서 도를 닦으려는데 이런 것은 받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에 감동해서 산적들이 무기를 버리고 그를 따라가서 삭발했다.

90세 영재를 스승으로 60대 제자가 섬겼다.

원성왕대의 일이다.

노래 하나가 제법 할 일을 한 것이다.

고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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