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수뇌부 아리송 행보 …민감사안마다 회의소집 결정 몸사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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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검찰 수뇌부가 요즘 이상하다.

마치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하는 것처럼 정치적으로 예민한 사건을 처리할 때마다 총장 주재로 수뇌부 회의를 하고 있다.

21일에도 박주선(朴柱宣)전 법무비서관 처리를 놓고 박순용(朴舜用)검찰총장 주재로 수뇌부 회의가 열렸었다. 얼핏 보기엔 검찰이 인신구속에 신중을 기하기 위한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게 법조계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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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뇌부들끼리도 朴전비서관 구속여부를 놓고 심각하게 의견이 엇갈렸기 때문에 이를 해소하기 위한 회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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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뿐만이 아니다. 朴총장은 김태정(金泰政)전 검찰총장과 이익치(李益治)현대증권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여부에 대해서도 이와 비슷한 회의를 거쳤다.

많은 일선 검사들은 이날 회의에서 이번 사건 주임검사가 朴전비서관의 혐의내용을 조목조목 설명하게 한 부분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수사검사가 상급자의 결재를 받아 영장을 청구하고 법원의 판단에 맡기면 되는 것이지 수사에 참여하지도 않았던 간부들이 회의에 참석해 '배 놔라 감 놔라' 할 수는 없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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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의 회의에선 수사팀과 일부 검사장들 간에 의견 대립이 심각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당연히 구속영장을 청구해야 할 사안에 대해서도 수뇌부 회의에서 불구속 목소리가 높으면 그걸 따라가거나 그 반대상황도 있을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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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검찰 수뇌부가 원칙에 입각한 법집행이 아니라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수뇌부 내부의 역학관계에 따라 사안을 다루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또 朴총장이 수뇌부 회의라는 형식을 거침으로써 자신이 져야 할 책임과 부담을 분산시키려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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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함께 검찰 내부에서는 朴총장이 朴전비서관에 대해 구속영장 청구를 승인할 뜻이 있었으면서도 수뇌부 내의 구속 반대파들을 무마하기 위해 회의를 열었다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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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장의 참모인 대검부장들조차도 출신지역에 따라 이번 사건의 처리방향을 두고 미묘한 알력과 갈등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제로 그동안 수뇌부가 朴전비서관을 구속하자는 수사팀 요구를 순수한 법률적 판단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특정지역 출신들의 항명성 행동으로 받아들이고 강력히 만류했기 때문에 결국 이종왕(李鍾旺)대검 기획관이 항의성 사표를 내고 검찰을 떠났다는 해석도 만만치 않다.

만일 국가 사정기관 중추인 검찰내부에 이런 식의 알력이 존재한다면 검찰 조직 내부에서조차 지역감정의 그림자가 짙게 배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다.

김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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