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해외출판] 미국 역사, 20개국 눈길로 본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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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Lessons: How Textbooks from Around the World Portray U.S. History
(역사의 교훈: 다른 나라 교과서에 담긴 미국 역사)
Dana Lindaman 외,
The New Press, 404쪽, 26.95달러

▶ 미사일 위기를 극복한 미국의 영웅 케네디도 쿠바에 가면 얘기가 틀려진다

흔히 미국 사람들은 외국의 지리와 역사에 어둡다고 한다. 자신들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믿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 대해 별로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그럴 듯하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일방통행식 외교정책도 이런 지적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이런 미국인들의 시야를 넓혀줄 만한 책이 나왔다. 하버드대 박사과정에 있는 대나 린더먼과 인디애나주 빈센니스대학의 카일 워드 교수가 쓴 『역사의 교훈』이라는 책이다. ‘다른 나라 교과서에 담긴 미국 역사’라는 부제를 보면 저자의 의도를 금세 알 수 있다. 미국이 관련된 역사적 사건을 그 나라 중·고등학교 교과서들이 어떻게 기술하고 있는지를 비교 조사한 것이다.

예컨대 1993년 미국의 빌 클린턴 행정부가 북한에 핵개발 포기를 전제로 경수로 원전을 지어주기로 한 합의를 보자. 저자는 미국 교과서에는 북한·미국간 핵합의에 관한 언급이 거의 없다고 한다. 하지만 북한 학생들은 북한이 세계 최강인 미국의 팔을 비틀어 이같은 합의를 도출해 냄으로써 국가적 자존심을 드높인 사건으로 배우고 있다는 것이다. 또 프랑스 교과서는 20세기 말 이후 미국의 존재에 대해 정치·군사·경제·문화적으로 ‘유일 초강국’임을 인정하면서도 그 파워가 분명한 한계를 지닌 것으로 적시하고 있다.

린더먼은 미국이 개입했거나 관련된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나 주제 50가지를 추려내 미국 학생들이 배우는 내용과 상대 나라 교과서의 시각이 어떻게 다른지를 비교하는 데 주력했다고 밝혔다. 영국·캐나다·중국·러시아·브라질·사우디아라비아·베트남·일본·한국·북한 등 20여개국의 교과서를 참고했다고 한다. 저자들은 자신들의 해석은 가능한 한 줄이고 외국 교과서의 문구를 있는 그대로 인용했다.

영국 정부의 과도한 세금부과에 반발해 미국이 1776년 조지 워싱턴총사령관의 지도 아래 일으킨 독립전쟁에 대한 시각도 나라에 따라 다르다. 미국 학생들은 국부인 워싱턴 장군의 지혜와 결단력으로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배우고 있지만 영국 교과서엔 영국군 사령관들의 서툴고 느린 작전 때문에 자신들이 진 것으로 기술돼 있다는 것이다.

미국 독립전쟁의 정신적 바탕에 대한 해석도 엇갈린다. 미국 교과서엔 계약에 의한 시민사회론을 주창한 영국의 존 로크 사상이 배경이 됐다고 쓰여 있지만 프랑스 교과서엔 프랑스 계몽주의 철학자들의 영향을 받은 산물이라고 기술돼 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국민적 영웅으로 만든 1962년‘쿠바 미사일 위기’도 러시아와 쿠바의 입장에서 보면 전혀 다른 얘기가 될 수 있다.

1898년 필리핀 항구에 정박 중이던 미군 함정이 파괴되면서 시작된 미국과 스페인간 전쟁에 대해 필리핀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미국이 제국주의적 팽창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배우고 있다. 당시 미국이 스페인으로부터 챙긴 전리품이 푸에르토리코와 괌,쿠바에 대한 통치권이었다는 사실이 그런 측면을 입증해 준다는 것이다.

미국이 캐나다와 벌인 전쟁에 대해서도 캐나다 교과서에는 가시 돋친 내용이 가득하다. 1775년 미국이 영국의 식민지 지배로부터 벗어나겠다며 독립전쟁을 벌이며 캐나다를 수중에 넣으려 했다는 것이다. 지금은 사이가 좋지만 캐나다만큼 미국의 역사에 대해 비판적인 나라도 드문 것 같다.

저자들은 미국인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과거사를 다른 나라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역사란 승자가 쓴 과거의 기록이라는 말이 있다. 다른 편에서 보면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상대편의 눈으로 바라본 미국의 역사’라고 이름 붙일만하다.

뉴욕=심상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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