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중앙서울마라톤대회 풀코스에 출전한 김이수 서울남부지법원장(오른쪽)과 부인 정선자씨가 출발에 앞서 완주 의지를 다지고 있다. [김성룡 기자]
10분 뒤, 50대 중년의 남성이 결승점에 도착했다. 정씨가 뛰어나가 끌어안았다. “수고했어요, 여보. 우리 둘 다 기록을 경신했어요.” 남자는 이날 열린 중앙서울마라톤대회 풀코스에 도전한 김이수(56) 서울 남부지방법원장이었다.
김 법원장이 달리기를 시작한 것은 2003년. 부인 정씨가 뛰는 걸 보고 자극받았다. 정씨는 2002년 건강을 위해 달리기 시작한 뒤 같은 해 경기도 일산에서 열린 마라톤대회 하프코스에 출전해 완주했다. 김 법원장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고 말했다. “가냘픈 아내의 몸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신기하고 감동적이었죠.”
이후 김 법원장의 마라톤 인생도 시작됐다. 홀로 뛰기는 없었다. 그가 운동화 끈을 조여 맬 때면 곁엔 항상 부인 정씨가 있었다. 부인이 심어 준 용기에 힘입어 김 법원장은 5년 전 중앙서울마라톤에서 처음으로 풀코스에 도전해 완주했다. 기록은 5시간5분. 한계를 절감한 힘겨운 레이스였다. 37㎞ 지점에서 다리에 쥐가 나 걷다시피 했다. 응급차가 그의 옆으로 다가섰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응원해 준 아내의 얼굴이 눈에 선했다. “그렇게 뛰어 결승점을 밟는 순간 말로 할 수 없는 가슴 벅찬 쾌감을 맛봤어요. 완주하고 나면 달릴 때 힘든 건 금세 잊고 또 달리는 게 마라톤의 미학이에요.”
올봄에 열린 마라톤대회 때도 그랬다. 김 법원장은 아마추어 마라토너에겐 ‘마의 벽’으로 불리는 4시간을 깨고 3시간57분 만에 42.195㎞를 완주했다. 집에 일이 있어 출전하지 못한 부인 정씨는 35㎞ 지점부터 응원군으로 함께 뛰었다.
부부의 마라톤 발 맞추기가 계속되면서 금실도 더 좋아졌다. 부인 정씨는 남편과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나니 그럴 수밖에 없다고 했다. “평생 함께하는 부부지만 나이가 들수록 같이 있는 시간이 줄어들게 마련이에요. 얼굴 보는 시간이 늘면서 자연히 대화도 늘었어요.” 김 법원장은 “다음 대회엔 기록을 깨겠다는 기대와 설렘을 함께 나누니 마음도 더 잘 통하더라”며 환하게 웃었다.
마라톤의 매력에 빠진 김 법원장은 아예 전도사로 나섰다. 지난 4월 남부지법 근처의 안양천변에서 직원 300여 명과 함께 ‘한마음 마라톤대회’를 열었다. 지방법원 차원에서 마라톤대회를 개최한 건 처음이었다.
경기 시작 전 “오늘은 아내를 이기고 싶다”고 포부를 밝힌 김 법원장은 이날 부인의 뒤를 이어 결승점을 밟았다. 그러나 그는 “내년에 또 질지도 모르지만 그때도 함께 뛴다는 사실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정선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