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욱 대기자의 경제 패트롤] 세종시, 입씨름보다 해법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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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재·보선이 끝나자마자 세종시를 둘러싼 공방이 뜨겁게 펼쳐지고 있다. 정운찬 총리가 재·보선 직후 원안 수정 필요성을 보다 분명히 밝히고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만나 설득할 뜻을 내비치자 박 전 대표는 곧바로 ‘정 총리가 뭘 모르는 것’이라며 ‘설득하려면 국민과 충청도민에게 해야지 내게 할 일이 아니다’며 강하게 맞받아치고 나섰다. 정부·야당의 대립에 이어 여권마저 내부 갈등에 휘말리면서 세종시 문제는 국론 분열의 불씨가 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다시 생각해 봐도 행정복합도시로서의 세종시 건설은 잘못 끼워진 단추였다. 국토 균형발전이라는 그럴싸한 논리에 기댔지만 실제론 표에 대한 계산이 먼저였고, 통일에 대비한 장기적 식견이나 협소한 국토라는 본질적 한계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결정이었다. 현 정부도 이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하지만 이제 토지 보상도 끝나고 2300만 평의 거대한 부지가 드러나면서 돌이키려야 완전히 돌이킬 수도 없는 단계에 왔다. 어떻게든 활용 방법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우선 가장 큰 문제는 정부 부처를 계획(9부2처2청)대로 이전할 것이냐다. 이와 관련, 적잖은 사람이 비효율성을 지적한다. 미국이나 브라질 등의 예를 들어 뭔 문제냐는 반론도 있지만 국토 크기만 생각해도 번지가 틀린 얘기다. 오히려 통일 후 본과 베를린으로 기능이 분산돼 불편을 겪는 독일이 타산지석이 될 수 있다. 중앙부처가 오지 않으면 기업이나 대학·연구소가 오겠느냐는 주장도 이상하다. 기업이나 연구소 입지가 왜 인력이나 금융·정보·유통 인프라가 아닌 행정기관, 그것도 중앙부처의 유무와 연결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관경(官經) 유착이 불가결한 게 아니라면 기업도시에는 원스톱 행정서비스 센터가 있는 게 훨씬 낫다.

행정도시로서 세종시가 가진 중요한 문제점은 효율성을 감안하면 너무 멀고, 공무원 정주(定住)란 목표를 이루기엔 너무 가깝다는 것이다. 현재 예정대로 KTX 오송역이 생기고 고속도로·국도를 새로 만든다면 서울과의 연계성은 줄어들 수 없다. 그렇다고 현실적 수요를 외면할 수는 없다. 결국 현재 가깝게는 오산~평택, 조금 멀게는 천안~아산까지 뻗쳐 있는 수도권이 공주~연기 또는 청주~대전까지 확대되는, 수도권 외연(外延) 확대로 끝날 소지가 다분하다.

그렇다고 정부 부처 이전이란 정치적 약속을 완전히 저버릴 수도 없다. 그러면 타협을 이뤄 낼 수밖에 없다. 지방과의 업무 관련성이 큰 부처를 다시 선별해 이전하고, 현지취업·현지정착과 연계해 입주 기업에 대한 파격적 인센티브를 부여하며, 대전의 기존 과학 인프라와 연결되는 미래 핵심 연구·개발단지를 만드는 등 새로운 밑그림을 그려 나갈 필요가 있다. 부지 활용도 미래 수요에 대비해 유보할 것은 유보하는 자세 또한 필요하다. ‘정치적 신뢰냐, 국가 막중대사냐’라는 입씨름보다 해법 찾기가 중요하다.

박태욱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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