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균 기자의 푸드&메드] A형 간염, 항체 없는 2030세대가 더 취약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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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플루에 묻혀 대중의 관심권에서 멀어졌지만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전염병이 있다. A형 간염이다. 질병관리본부는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A형 간염 주의보를 내렸다. 2002년 300여 명 수준이던 환자가 지난해 7900명으로, 올해엔 1만4000여 명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대한간학회 이영석 이사장은 특단의 대책이 없는 한 내년엔 환자 수가 3만 명이 넘을 것으로 예상했다.

A형 간염은 며칠 가볍게 앓고 나면 낫는 병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지만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실제 병독성은 신종 플루보다 훨씬 높다. 비공식 통계지만 올해 A형 간염에 의한 사망자가 15명에 달한다. 간 이식 수술을 받아 간신히 생명을 구한 사람도 상당수일 것으로 간학회는 추정한다. 기침·재채기 등의 비말(작은 물방울)을 통해 전염되는 신종 플루와는 달리 A형 간염은 A형 간염 바이러스에 오염된 물이 주된 전파원이다. 그러나 전염성은 신종 플루 못지 않다는 것이 감염내과 의사들의 평가다.

요즘 국내 신종 플루 감염자의 대다수가 초·중·고생 등 학생층이라면 A형 간염 환자는 80%가 2030세대다. 이 연령대에 A형 간염의 발생이 집중되는 것은 젊은 세대의 몸 안에 A형 간염 바이러스와 맞서 싸울 항체가 없다는 뜻이다.

신종 플루는 타미플루·리렌자 등 치료약이 있다. 이와는 달리 A형 간염은 특별한 치료약이 없다. 걸리면 대증요법, 충분한 휴식, 고단백 식사요법이 고작이다.

신종 플루와 마찬가지로 A형 간염도 백신이 최선의 방어 무기다. 항체 생성률이 A형 간염 백신을 한 번 맞았을 때는 90%, 두 번 맞으면 98%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종 플루 백신보다 효과가 더 강력한 셈이다. 신종 플루 백신은 접종 후 10일가량만 지나도 몸에 항체가 형성되지만(면역력 획득) A형 간염 백신은 맞은 뒤 항체가 생기려면 2~3개월이 소요된다. A형 간염 바이러스가 가장 활개를 치는 시기는 보통 4~8월이다. 따라서 늦어도 내년 2월 전엔 백신을 맞아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우리 정부와 국회도 A형 간염의 심각성에 대해선 공감하고 있다. 현재 지정 전염병인 A형 간염을 1군 법정전염병으로 상향 조정하는 것을 골자로 한 전염병예방법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그러나 대책이 너무 안이하고 한가하다는 지적이 많다. 전염병예방법 개정안이 원안대로 통과되더라도 1년간 유예기간이 설정돼 있어 실제 효력은 내후년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또 A형 간염을 국가 필수 예방접종 사업에 포함시켜 영·유아에게 의무 접종하는 방안은 이번에 채택되지 않았다. 예산(88억원 추산) 부족이 이유다. 영·유아 대상의 백신 접종은 장기적인 차원에서, A형 간염 발생 위험이 큰 2030대와 고위험군에 대한 백신 접종은 곧바로 질병 확산을 억제하는 효과를 안겨줄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A형 간염 백신은 신종 플루 백신과는 달리 100% 수입품이다. 물량을 주문해서 접종받기까지 4개월가량 걸린다. 올해도 병원마다 A형 간염 백신이 부족해서 쩔쩔맸다. 병원에 따라 사정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지금은 재고가 거의 바닥난 상태다. 방역당국은 A형 간염 백신의 수요 예측과 확보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장기적으로 국산 A형 간염 백신을 개발하면 백신 주권을 확립하는 것 외에 1회 접종당 6만∼8만원이나 하는 백신 접종 비용도 크게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박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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