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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리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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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전설적 펀드매니저인 피터 린치는 ‘복리의 힘을 믿어라’라는 투자 금언을 남겼다. 1626년 미국 원주민(인디언)이 백인 이주자에게 판 맨해튼의 땅값 24달러를 예로 들었다. 많은 사람이 원주민이 어리석었다고 생각했으나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피터 린치의 계산법이다. 원주민이 연 8% 복리로 예금했다고 가정하자. 피터 린치가 계산기를 두드린 1988년, 24달러는 30조 달러로 증식했다. 그해 맨해튼 땅값(562억 달러)보다 530여 배가 많았다. 올해 기준으로 계산하면 24달러는 더 불어나 151조 달러가 된다.

원금에 이자를 붙여 다시 원금화하고, 여기에 이자를 또 붙이는 복리(複利)는 두 얼굴의 곱셈이다. 저축하는 사람에겐 복을 주는 복리(福利)요, 빚을 못 갚는 사람에겐 고통을 주는 폭리(暴利)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가장 강력한 힘은 핵폭탄이 아니라 복리”이고 “복리는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라 했다는 설도 있다. 그가 진짜 그런 말을 했는지 의심스럽긴 하지만, 복리의 위력을 잘 표현한 말인 것만은 확실하다.

복리는 계산기 없이 셈하기 힘들다. 그래서 개발된 것이 속셈 법칙이다. 원금의 두 배를 만드는 기간과 금리를 아주 쉽게 산출해주는 ‘72의 법칙(the Rule of 72)’이 대표적이다. 예를 들어 연 6% 금리의 예금이 두 배로 늘어나는 시간을 알아보려면 72를 6으로 나누면 된다. 답은 12(년)이다. 72의 법칙은 15세기 이탈리아 수학자 루카 파치올리가 원리 설명 없이 이용법만 소개했다. 이전부터 사용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수학이 발달한 뒤엔 더욱 정교한 ‘69.3의 법칙’으로 다듬어졌다. 하지만 근사값을 쉽게 얻을 수 있는 72의 법칙은 여전히 애용된다. 원금을 3배와 4배로 각각 만드는 ‘114의 법칙’과 ‘144의 법칙’은 유사 발명품이다.

삼성전자가 창립 40주년을 맞아 지난해 1103억 달러였던 매출액을 2020년 4000억 달러로 끌어올리겠다고 발표했다. 어림잡아 ‘12년간 4배 만들기’다. 얼핏 막막해 보이지만, 144의 법칙에 따라 매출을 해마다 12%(=144÷12년) 늘리면 달성 가능한 목표다. 과거 10년간 매출 6배 만들기(포춘 500대 기업 자료)에 성공한 전적도 있다. 저마다 몇 배 상향의 목표를 잡아볼 필요가 있다. 복리의 힘을 믿고 정진하면 생각만큼 어렵지 않을 수 있다.

허귀식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