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퇴직연금보험 외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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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종업원퇴직적립보험(종퇴보험)의 대체상품인 퇴직연금보험이 기업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이 종퇴보험금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쓰는 관행이 여전히 고쳐지지 않아 자칫하면 종업원들이 퇴직금마저 날릴 가능성이 남아 있다.

실제로 P건설의 경우 지난달 초 2백억원 가량의 종업원 종퇴보험을 해약, 운영자금으로 썼다.

우선 부도를 막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회사측의 설득에 어쩔 수 없이 동의해 줬다' 는 것이 종업원측 설명. 한국노총 이화진 연구원은 "올해부터 종퇴보험을 해지하려면 종업원의 동의가 필요하도록 규정이 강화됐지만 '회사부터 살아야 하지 않느냐' 는 회사 요구에 종업원들이 쉽게 무너진다" 면서 개선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 부진한 퇴직보험 전환〓파산 등 기업이 최악의 상황에 처하더라도 근로자들이 퇴직금은 건질 수 있도록 올 4월부터 손.생보사를 통해 퇴직보험 판매를 시작했다. 또 기업들에는 종퇴보험을 퇴직보험으로 전환토록 유도하고 있다.

그러나 올 4~10월 팔린 퇴직보험은 2천4백여건 1조6천3백여억원(금융감독원 자료)으로, 감독원이 추정하는 시장 규모(16조원선)의 10% 정도만이 퇴직보험으로 전환되는 데 그쳤다.

◇ 왜 안팔리나〓종퇴보험은 기업들이 종업원 동의만 받으면 언제든지 전용할 수 있는 데 반해 퇴직보험은 근로자들이 주인이어서 회사가 손을 댈 수 없기 때문이다.

자금사정이 어려운 기업들이 종퇴보험을 담보로 돈을 빌려 써온 관행도 걸림돌이다. 제일화재 관계자는 "담보를 풀 자금 여유가 없는 기업들이 많고, 설사 여유가 있다 해도 퇴직보험 전환은 자금지출 우선 순위에서 밀리고 있다" 고 지적했다.

종퇴보험은 내년 9월까지만 신규 가입이 가능한데, 내년 10월 이후 기존 종퇴보험 가입자들이 1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할 수 있는지 여부가 명확치 않은 것도 기업들의 퇴직보험 전환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 유인책 강화돼야〓퇴직보험 전환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현재 종퇴보험료나 퇴직보험료를 똑같이 기업의 손비로 인정해 주고 있는 규정을 바꿔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한국노총 李연구원은 "종퇴보험의 손비인정 범위를 축소해 퇴직보험에 세제 혜택을 더 주면 전환을 촉진할 수 있을 것" 이라고 말했다.

우리노무법인 이근덕 노무사는 "일정기간 유예기간을 두고 종퇴보험에 대해서는 손비를 아예 인정해 주지 않아야 한다" 고 권고했다.

신성식.곽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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