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3500억짜리 공항에 하루 1편 비행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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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2년 전에 문을 연 강원도 양양국제공항은 하루 1편의 비행기가 뜰 뿐이다. 3500억여원을 들여 지은 국제공항의 실정이다. 김해를 오가는 이 비행기마저 승객이 줄어 계속 운항될지 불투명하다. 지방공항의 어려움은 양양만의 문제가 아니다. 16개 지방공항 중 지난해 흑자를 낸 곳은 김해와 제주뿐이다. 지난 4월에는 경북 예천공항이 완공 2년 만에 폐쇄됐다. 이 와중에 울진.무안.김제공항의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지방공항의 어려움은 당초부터 예상됐던 일이다. 양양.예천공항의 경우 건설 당시부터 주변 고속도로 확장 등으로 항공 수요가 적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도 공항 건설을 강행해 수천억원짜리 공항이 2년 만에 문을 닫아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더욱 한심한 것은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는데도, 정부는 원인을 밝혀내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는 점이다. 최근 국회 건설교통위 전문위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정부가 지방공항 건설의 타당성을 과장한 것으로 드러났다. 울진.무안공항의 항공 수요 예측을 부풀려 타당성을 높인 것이다. 또 김제공항의 경우 정부는 각종 편익이 건설 비용의 1.19배로 예상돼 사업성이 있다고 밝혔지만, 감사원 감사 결과에서는 0.63으로 사업 타당성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이런 일이 어떻게 벌어질 수 있었는지 철저하게 조사하고 관련자를 문책해야 한다. 또 지방공항을 유치하기 위한 정치권의 압력이 있었다면 이를 밝혀내 공개해야 한다. 그래야 표만 의식해 허황된 공약을 남발하는 정치인의 한심한 행태와 이런 압력에 밀려 국민 세금을 낭비하는 공무원의 무책임한 행태가 반복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실패한 대형 국책공사의 과거사야말로 반드시 규명돼야 한다. 이와 함께 앞으로 대형 국책공사를 할 때는 입안단계부터 완공될 때까지 공사에 관련된 공무원과 정치인 등의 실명을 모두 공개해 국민 세금의 낭비를 막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