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583. 아라리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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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제13장 희망캐기 18

그 순간 주인은 깨달았다. 이 작자와 입씨름을 벌이게 되면 불리한 것은 자기뿐이었다. 종업원들과 고객들과 바깥의 구경꾼들은, 누명이든 사실이든 장물아비란 악다구니가 쉴새없이 터져나오면, 횟집 장사는 그야말로 망조로 접어들 수밖에 없었다.

최씨라는 상인은 제 입으로 서울로 오는 도중 휴게소에 주차시킨 다른 활어 차량에서 훔친 물건이라는 것을 실토했고, 그 절도한 물건을 자기가 산 것도 명백했다.

게다가 이제까지 상인을 만날 때마다 죽는 소리 앓는 소리 해가며 쌓아 놓은 외상 거래도 2백만원에 육박하고 있었다. 따라서 자신은 모르고 있었지만, 최씨란 상인은 활어를 훔쳐서 팔고 다니는 상습 절도범일 수도 있었다.

그런 작자와의 과도한 외상 거래가 이제 와서야 큰 화근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일 쓸 채소 장보기를 나갔던 아내까지 돌아왔으나, 그녀로부터 훈수도 기대할 건덕지는 없었다.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전에 우선 발등에 떨어진 불똥부터 털고 봐야 했다.

영문을 모르고 있는 손님들과 종업원들을 서둘러 돌려보내고 가게 문을 닫기로 하였다. 두 사람과 흥정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

박봉환에게는 밖에 있는 활어 상인이 도망하지 못하게 지키고 있으라고 눈을 찡긋하고 방극섭만 어깨에 바람을 일으키며 식당으로 들어와 주인 내외와 마주앉았다. 가게 문을 닫았기에 식당은 그런대로 호젓했다.

맥주 한 잔부터 권했으나 방극섭은 손사래를 치고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속이 타는 주인이 그 맥줏잔을 훌쩍 들이마셔 버렸다.

"형씨, 저 놈이 상습 절도범이란 것은 알겠습니다만, 난 저 놈과 한통속이 아닙니다. 장물아비라니, 내게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 누명을 씌운 건지 우선 그 것부터 알아야 겠어요. "

"야그가 안되네? 저 놈이 절도범이란 것도 알고 있는데, 누명을 썼다는 것이어라?" "그렇습니다. " "싸가지 없는 말 집어치우시요이. 절도범이란 것을 알고 그 놈의 물건을 샀다면 그것이 장물아비 아니고 ×이당가?"

"옛날부터 알았단 말이 아니라, 오늘에사 알아차렸단 말입니다. " "옛날에 알았든 지금 알았든 무신 상관이어라□ 절도범의 물건을 상습적으로 구입해 왔으면, 그것도 상습 장물아비 아니겄소? 절도범과 장물아비란 찰떡에 조청 궁합으로 소문난 것인디, 당신네 내외가 경찰서 잡혀가서도 누명썼다고 소리칠 것인지 워디 두고 봅시다."

그제서야 안주인이 파랗게 질려 방극섭을 노려보며 말했다. "이 이만 들어가면 됐지. 왜 나까지 들어가요? 난 정말 억울하잖아요. " "아줌씨는 이 때까지 남의 눈에 피눈물나는 짓은 안 저질렀다고 장담할 수 있어라? 며칠 전만 하더라도 여그서 일하던 종업원이 절도범 누명을 쓰고 경찰서에 잡혀갔다는 야그를 저 도둑놈이 자백했소. 당신네들이 장물아비가 아니라면 어째서 요 게딱지만한 식당에 절도범들만 들끓고 있어라? 가재는 게편이니까 저들끼리 모여서 들락거린 게 아니겄소. 그래도 장물아비 아니라고 어디 한번 버텨보실랑가? 그라고 고려 쩍부터 부부는 일심동체란 말이 있는디, 남편은 구치소에 들어가 사시나무 떨 듯하고 있는디, 여편네는 집에서 발 뻗고 자겠다는 싸가지 없는 심보는 ×이당가?"

찌그러진 상판이던 주인이 아내의 옆구리를 뚝 잡아떼면서 말했다. "그 말은 맞아. 당신 말 잘못했어. "

샐쭉한 안주인이 발딱 일어나 수도꼭지를 틀어 컵 가득히 물을 담아 벌컥대고 마셨다. "형씨 말이 틀린 데가 없습니다. 내가 장물아비든 아니든 이미 근처에 소문이 퍼져 장사해 먹기도 글렀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그건 안되지라, 이렇게 떡 벌여놓은 가게를 하룻밤에 말아 먹어야 쓰겄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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