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검찰청사 유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사법시험에 합격하면 판사가 될 수도 있고 검사가 될 수도 있다. 30년 전까지는 판사의 길이 단연 인기 있었다. 판사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독립된 국가기관으로서 막중한 권위를 가진 몸임을 생각하면 그럴싸한 일이었다.

국회의원에도 판사출신이 검사출신보다 많았다. 판사로 뽑힐 자격이 되는 연수원생이 검사를 지망한다면 특별한 뜻을 가진 사람으로 보곤 했다.

70년대 들어 이런 사정에 변화가 일어났다. 검찰을 지망하는 우수한 연수원생이 늘어나 때에 따라서는 법원을 앞지르기까지 하게 됐다.

스스로 3D직종이라 칭하는 검사의 인기가 왜 높아졌을까. 국가기능이 강화됨에 따라 사건을 받아 판결만 하는 판사의 수동성보다 사건을 찾아 적극 처리하는 검사의 능동성이 국가와 사회에 더 훌륭한 공헌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늘어난 것 같다.

다른 한편으론 검사의 길이 출세에 더 유리하다는 인식도 늘어났다. 판사보다 검사가 언론의 각광을 받는 일이 많아졌고 정계 진출도 많아졌다.

재력가들은 학교 후배나 먼 친척 중에라도 검사가 있으면 후원자 노릇을 맡으려 안달이라고 한다. 권력기관으로서 검찰의 비중도 크게 늘어났다.

대법원과 대검찰청이 덕수궁 옆에 있을 때, 두 건물의 모습은 두 기관의 성격을 그대로 나타냈다. 고풍 어린 법원청사가 '권위' 를 몸으로 말해준다면 멋대가리 없는 현대식 검찰청사는 '기능' 의 상징으로 보였다.

그런데 서초동으로 옮기며 양쪽 건물의 차이가 크게 줄어들었다. 외장만 다를 뿐, 규모나 기본형태가 거의 똑같게 된 것이다.

서초동뿐 아니라 80년대 이후 지은 전국 각지의 법원과 검찰 건물이 모두 이런 식이다. 법정 중심의 법원 건물과 사무실 위주의 검찰 건물을 한 켤레 신발처럼 꼭 맞춰 지은 것은 검찰의 권위를 법원과 대등하게 보이려는 의지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80~90년대는 이런 의지가 관철된 시기였다. 얼마 전 청주지검에서 '검찰 갤러리' 를 열었다. 청사 건물의 여유를 지역사회에 문화공간으로 제공한다는 것이다. 뜻은 좋지만 과연 범죄인을 수사하는 검찰청사가 그런 목적에 적합한 것인지 의아하기도 하다.

법원청사에 지지 않게 웅장하게 지어놓고 보니 과분한 공간을 가지게 된 것 같기도 하다. 아무리 화려하고 웅장한 청사를 지어도 이 건물을 등지는 예비법조인이 늘어나고 있다.

'권력의 시녀' 가 되기보다 세계화시대의 선두주자를 바라보고 로펌(법률회사)으로 많은 최정예 연수원생들이 빠져나가는 것이다.

특히 검찰 외면추세가 몇년째 극심해서 관계자들은 걱정이 태산이라고 한다. 유능한 청년들을 끌어들이는 것은 훌륭한 건물보다 선배들의 떳떳한 모습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