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579. 제13장 희망캐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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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제13장 희망캐기 ⑭

"업주라니요?"

"업주도 몰라? 청해식당 주인 말이야. "

들었다 놓았다 하기를 거듭했지만, 경관은 친절했다. 우선 승희가 불리한 점을 낱낱이 가름해 주었다. 첫째는 승희에게 일정한 주거지가 없다는 것이 결백을 증거하는 데 결정적으로 불리하다는 점을 들었다. 강도살인을 저지르는 강력범들의 공통점은 주거지가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가방 속에서 나온 현금이 정말 임금으로 정산하여 받은 것인지, 아니면 도둑질한 돈인지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 돈을 임금으로 건네주었다는 흔적이 전혀 없는 것도 문제지만, 어째서 지불한 당사자가 현금을 털렸다고 신고를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대질신문이란 것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말을 바꾸면 곧바로 무고죄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본인이 신고한 이상, 국회의원들처럼 면책특권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 바꾸기를 기대한다는 것도 하늘의 별따기였다. 더욱이나 승희에겐 결백의 단서로 작용할 수 있는 보호자나 가족조차 없다고 딱 잡아뗐기에 그 부분에 대해서도 기대를 걸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줄곧 결백을 주장하는 그녀를 딱하다는 듯이 바라볼 뿐이었다.

자신도 결백의 심증은 갖고 있으나 모든 상황이 승희에게 불리하기 때문에 혐의는 요지부동이라고 오히려 하소연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한번이라도 좋으니 업주와의 대질신문을 요구했다. 그의 배려로 주인과 시늉뿐인 면담이 이루어지긴 했지만, 예상했었던 대로 아무런 소득도 없었다.

남편을 대신해서 나타난 그 여자는 놀라울 정도로 침착하고 착한 여자로 변신해 있었다. 그녀는 승희가 가게에 나타나서 취업이 결정날 때까지 상황을 거울 속을 들여다보며 엮어내듯 소상하게 그려냈다. 뜨내기라는 것이 너무나 께름칙했지만 활어를 횟감으로 빗어 내는 솜씨가 탁월했었으므로 고용을 결정하고 말았던 것이 불찰이었다고 오히려 자신을 탓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자신들의 신중하지 못했던 불찰을 탓하는 것과 승희의 요리 솜씨를 칭찬해 주는 증언조차도 그 시점에서는 오히려 승희를 옭아매는 단서로 작용될 뿐이었다. 곱다시 도둑의 누명을 뒤집어쓰고 말았다. 그녀는 파출소에서 경찰서로 이송되었다. 형사사건이었기 때문에 모든 절차는 삽시간에 이루어지고 만 것이었다. 그리고 경찰서의 구치소가 어느덧 그녀가 기거하는 장소가 되어 버렸다.

그녀를 신고했던 청해식당 업주도 경관이 했던 말대로 번복할 낌새가 없었다. 스스로 발등 찍는 일을 저지를 까닭이 없었다. 그녀가 지녔던 돈은 몽땅 증거품으로 압수되고 말았기 때문에 구속기간 동안 사식을 사먹을 수도 없었다. 드디어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해체되고 있었다. 그러나 친정집의 전화도 혹은 헤어진 첫 남편의 주소도 알 수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전화를 건 사람이 고흥에 있는 방극섭이었다. 그는 곧장 서울로 뛰어 올라왔다.

"요상하네요이. 나가 전라도 고흥 촌구석에 살고 있는 촌놈이지만, 산전수전 다 겪고 사는 놈인디,가지말라고 사정하는 사람 매몰차게 뿌리치고 떠난 사람을 경찰서 구치소에서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네요이□ 근디 워쩌다가 이 꼴이 됐뿌렀소?"

"이때까지 모두 설명을 해드렸는데, 또 물어요?"

"시상 인심이 아모리 각박하지만, 멀쩡한 여자를 무고로 덤터기를 씌우고 지들은 발 뻗고 자자는 고약한 심뽀가 정말인가 싶어서 다시 물어본 것이요. 요런 놈의 싸가지 없는 시상이 어디 있겄소? 나가 이 씨발 년놈들을 회칼로 싹 쓸어버려야 쓰겄당게. "

"안됩니다. 불한당 노릇 하려거든 제발 그냥 내려가세요. "

"그놈의 가게를 쑥밭으로 맹글지 않고서는 설분할 길이 없응게 하는 말 아니겄소. 승희씨는 가만 있으시오. 나가 연놈들에게 앙갚음해야 쓰겄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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