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핵심 잇단 '거짓말 게임' 도대체 누굴 믿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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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한국사회는 '거짓말 경연장' 이고 사회지도층은 '연극 배우' 인가.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 을 지켜보는 시민들의 마음은 충격에서 혼란, 혼란에서 배신으로 옮겨가다 이젠 아예 허탈의 늪에 빠졌다.

하루가 멀다하고 튀어나오는 허위와 음모, 은폐라는 신문기사의 제목은 세인의 눈길을 끌지도 못하는 그저 평범한 단어가 되고 말았다.

많은 시민과 지식인들은 사회지도층이 '식은 죽 먹듯' 거짓말하는 풍토가 계속된다면 불신이 사회를 뒤덮으면서 국가 기강이 무너질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26일 옷 로비 의혹 사건에 대한 청와대 사직동팀의 내사 보고서가 박주선(朴柱宣)청와대 법무비서관에 의해 김태정(金泰政)전 검찰총장에게 건네졌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시민들은 "사회지도층이, 그것도 사회 정의를 지키는 법조인들이 저럴 수가…" 하며 개탄했다.

더욱이 金전총장이 자신의 사무실에서 신동아그룹의 로비스트로 알려진 박시언(朴時彦)씨에게 '검찰총장 부인 관련 비위첩보 내사결과' 를 직접 건네줬다는 부분에 이르러서는 할 말을 잃었다.

朴비서관은 24일까지만 해도 기자회견을 통해 "金전총장에게 옷 로비 보고서를 건네주지 않았다" 고 주장했다. 또 "사직동팀의 최초 보고서는 있지도 않다" "수사 내용을 축소.왜곡하지 않았다" 고 주장했다.

그러나 특검팀의 수사로 金전총장에게 문건을 건네준 장본인이 朴비서관이고, 그가 사직동팀의 수사결과를 왜곡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그의 거짓말은 며칠 가지 못했다.

金전총장 역시 "옷 로비 사건을 엄중 수사했다" "절대로 朴비서관으로부터 자료를 받지 않았다. 밝힐 수 없는 개인 경로로 입수했다" 고 거짓말을 하다 사직동팀 최종 보고서가 공개된 이날 "건네받았다" 고 시인했다.

'언론장악 문건' 사건에 연루된 이종찬(李鍾贊)국민회의 부총재측은 "문건을 6월 24일 입수했다" 고 주장하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6월 23일이라고 말을 바꿨다.

또 "文일현씨와의 통화내용을 녹취한 테이프가 있다" 고 밝혔다가 뒤늦게 "녹음기 조작 실수로 녹음하지 못했다" 고 주장했다.

지도층의 '거짓말 행진' 에 대해 회사원 金모(33)씨는 "옷 사건을 다룬 언론보도를 접할 때마다 세상이 온통 뒤죽박죽인 것처럼 보여 정신이 멍멍하다" 면서 "요즘 같아선 '세상은 요지경' 이란 노래가 절로 나온다" 고 말했다.

시민단체들은 "옷 로비와 관련한 최초 보고서와 최종 보고서의 내용이 다른 점으로 보아 청와대 비서관들이 대통령에게조차 허위보고했을 가능성도 있다" 며 "청와대에서까지 거짓말이 난무한다면 누가 정부의 말을 믿겠는가" 며 허탈해 했다.

참여연대는 논평을 내고 "朴비서관이 수사기밀이라고 판단되는 사직동팀의 보고서를 피의자 가족에게 넘겨준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이라며 "이는 청와대의 중립성과 공정성을 심각하게 훼손한 것으로 도덕적 해이와 국정 난맥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 라고 지적했다.

시민들은 옷 로비 의혹과 언론장악 문건 등 최근 제기된 의혹들을 말끔이 밝혀야함은 물론, 책임자들에 대한 엄중한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고계현(高桂鉉)경실련 시민입법국장은 "옷 로비와 관련된 거짓말들이 확인될 경우 朴씨 등을 직무유기.직권남용 등으로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 고 말했다.

이규연.유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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