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정숙씨 문건 왜 공개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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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배정숙(裵貞淑)씨측이 22일 사직동팀 최초 보고서로 추정되는 문건을 전격 공개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이 문건 공개로 연정희(延貞姬).이은혜(李恩惠)씨는 물론 裵씨도 이 문건을 근거로 말맞추기를 했음이 드러났다.

따라서 裵씨가 자신의 위증 혐의가 담긴 이 문건을 모종의 계산 없이 '단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밝히기 위해' 공개한다는 말은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다. 또 문건에는 조사 결과 "裵씨가 延씨를 통해 이형자(李馨子)씨 문제를 해결해주려는 의도가 있다고 판단된다" 는 작성자의 판단이 들어 있어 결코 자신에게 유리하지 않다는 점에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현재 가장 유력한 배경은 이 문건이 이형자씨 주장을 깨는 데 결정적이라고 판단했다는 추론이다. 사직동팀.검찰 조사와 달리 특검 조사에서는 李씨가 가장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분위기다.

이 때문에 李씨의 다각적인 로비 의혹은 묻히고 裵씨를 비롯한 고관부인들의 거짓말만 부각되고 있는 상황을 だ還쳔같渼募?의도라는 분석이다. 문건에는 李씨가 고위층 부인 등을 팔고 다니고 延씨 등을 음해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를 부각해 사건이 모두 李씨 자매들의 음모라는 주장을 확인시키기 위해서는 일부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이 공개되는 출혈도 감수하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또 다른 가능성은 문건을 폭로함으로써 가장 피해를 보게 될 延씨를 전면에 부각시키려 하지 않았겠느냐는 분석이다. 실제로 문건이 사직동팀에서 작성된 것이라면 이 문건이 왜 유출돼 延씨에게 전달됐는지 여부가 소명돼야 한다.

延씨가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에 대해 말맞추기를 먼저 시도했다면 그 이유가 로비의혹을 해명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될 수밖에 없다. 현재 延씨와 裵씨의 사이가 상당히 소원해졌다는 소문도 이 가능성을 뒷받침해 준다.

마지막으로 裵씨가 특검 수사가 외부의 입김에 의해 흐지부지될 것을 우려해 문건을 직접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다. 사실 裵씨측은 이 사건과 관련된 증거물을 들고 모 일간지 기자와 상의한 적이 있고 이것이 계기가 돼 특검팀의 압수수색이 이뤄졌다.

그러나 그 내용이 발표되자마자 청와대측의 불만이 터져나오고 특검도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자 언론에 전격 공개했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裵씨는 이 문건 외에도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판단되는 증거와 정황을 특검에 모두 털어놓을 가능성이 크다. 사건이 급진전될 수도 있는 대목이다.

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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