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농산물개방 떳떳이 설득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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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1월말이면 세계무역기구(WTO)가 새로운 다자간무역협상을 출범시킨다. 21세기 무역질서를 만들겠다는 이번 무역협상에서도 우리의 관심은 역시 농산물시장 개방이다.

우루과이라운드 때 쌀 개방문제로 온나라가 떠들썩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또 협상을 해야 한단다.

그때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지난번에는 협상 막바지에 가서야 난리를 피웠지만, 이번에는 협상을 시작하기 전부터 '결의' 를 다지는 것이다. '농산물 개방은 안된다' 는 투지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자유무역사회의 일원으로서 우리에게 농업은 항상 부담이었다. 그래서 정부는 "자유무역을 원한다. 그러나 농업은 예외다" 라는 떳떳하지 못한 입장을 택해 왔다.

같은 이유로 시장개방을 전제로 한 농업 구조조정을 추진하기보다 어떻게든 개방을 늦추는 전략을 구사해 왔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대통령도 "농업도 세계와 경쟁해야 한다" (다른 말로 하면, "개방을 할 수밖에 없다" )면서도 "무역협상에서 농업에 대한 우리의 입장 관철에 최선을 다하겠다" (다른 말로 하면, "어떻게든 개방을 하지 않겠다" )는 모호한 얘기를 되뇌고 있다.

새로운 무역협상을 계기로 농업도 전(全)경제 차원에서 입장을 정립할 때가 된 것 같다. 농업은 국내총생산(GDP)의 4.7%, 농민은 전체인구의 11%를 차지하고 있다. 농업시장 개방을 따질 때, GDP의 95%를 창출해 내는 제조업.서비스업, 그리고 89%인 소비자 인구도 고려해야 한다는 얘기다.

지난 수년 우리는 농업 구조조정에 50조원이 넘는 돈을 부어 넣었다.

그것도 모자라 또 45조원의 돈을 쓰겠다고 한다. 위기극복 과정에 수십조원의 부담을 지게 된 국민, 수많은 실업자들에게는 엄청난 짐이다.

농산물시장 개방을 반대하기 전에 한번쯤은 "안그래도 어려운 국민에게 비싼 농산물을 잡수시라고 해서 미안합니다" 라고 이해를 구해야 하지 않을까. 신토불이(身土不二)만 외칠 게 아니라.

김정수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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